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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영화는 80년대로 넘어오면서 70년대의 낭만적 판타지에서 벗어나 청소년들의 현실 자체를 인식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한다.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은 이미 일본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원작을 바탕으로 한국적으로 얼마나 변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 스타일적으로는 일본영화와 비슷한 장면들이 많아 표절시비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작품이다. 그러나 여류감독이었던 이미례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이전의 하이틴 영화들이 건전과 모범을 강조하던 것에서 벗어나 반항과 비행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80년대 청소년 영화의 전형을 만든 작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특히 주인공인 유리(김진아)라는 캐릭터는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유형의 10대 인물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인 유리가 왜 반항하고 비행에 빠져드는 지에 대한 이유를 두가지 정도로 제시하고 있다. 어릴 때의 심한 병으로 인해 머리가 노랗게 탈색되어 또래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과 함께 아버지(남궁원)의 비도덕적인 이중생활로 인한 가정의 불화를 또 하나의 원인으로 제시한다. 이렇게 유리의 반항의 근거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설득력을 획득하며 재미를 부여하던 영화는 유리의 비행을 교정하는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지나치게 교조적인 대사와 단조로운 화면구성으로 인해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쉬움이다. 어쨌든 이미례 감독은 올바른 부모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청소년 비행의 원인을 가정이라는 공간으로 축소한다. 유리가 불량클럽에게 린치를 당하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아버지가 온 몸으로 막아내며 유리의 신뢰를 회복하며 모든 갈등이 풀리는 것은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일방적 권위가 아닌 사랑 그 자체의 중요하며 그로 인해 아이들은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제를 설득하는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여류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김보애)를 결정적인 순간에 갈등의 해결에 참여시키지 않는 것은 역시 아쉬운 지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비행의 원인을 노랗게 탈색된 머리에도 똑같은 비중을 두었더라면 당시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단조롭고 보수적이었던 한국사회를 동시에 비판하는 성과를 거둘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어쨌든 이미례 감독은 데뷔작에서 일정한 성취는 이뤘다고 보여진다. 황혜미 감독이후 오랫만에 등장한 여류감독이라는 화제성과 흥행성공은 그녀가 계속 영화작업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의 작품들이 이 영화의 성과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편이니 데뷔작이 대표작이 된 셈이다. 그리고 80년대의 대표적인 여배우중의 한명이었던 김진아는 두번째 작품인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준 것 같다. 어머니로 출연한 김보애는 김진아의 친어머니이기도 한데, 두 사람의 살벌한 연기가 꽤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나는 이 영화를 중학생 시절에 부산에 있는 보림극장에서 <마리아스 러버>와 동시상영으로 봤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꽤 재미있게 본 것 같지만 나와 동시대를 살았을 유리가 처한 살벌한 세계에 공감을 하진 못했던 것 같다. 영화를 다시 보니 그때만큼 재미는 느끼지 못했지만 유리의 그 살벌한 세계엔 공감이 되더라. 살아보니 세상은 정말 살벌한 곳이더라고…^^


개봉 : 1984년 10월 27일 국도극장

감독 : 이미례

출연 : 김진아, 남궁원, 김보애, 정욱, 김윤경, 조주미, 안소영, 김인문, 최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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