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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의 신상옥 감독은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최고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작품이 단순히 재미를 위한 오락에 머물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완성도에서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60년대 신상옥 감독은 영화 산업에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감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대중과의 교감에 소홀하지 않으면서도 예술로서의 영화에 대한 고민을 작품에 녹여내려는 노력이 신상옥이라는 이름과 신필름이라는 전설을 만들어낸 요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화려했던 60년대의 끝자락인 1969년에 개봉된 <이조 여인 잔혹사>를 너무 재미있게 보았다. 신기했던 것이 지금의 관객인 나로서는 그동안 TV의 전설의 고향이나 여타 드라마를 통해 이미 너무 많이 접해 닳고 닳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결국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좋았던 것일까? 무엇보다도 스토리를 끌고 가는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이 확실하게 되었다는 것을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 여인네들에게 말이다.

 

<이조 여인 잔혹사>는 3개의 스토리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다. 원작은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나 한 개(윤정희 주연 파트)가 유실되었다고 한다. 1편 <여필종부>편은 가문의 체면과 출세를 위해 딸을 희생시키려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통해 허울에 얽매여 있던 사회를 보여준다.


2편 <칠거지악>편은 가장 흔한 소재라고 할 수 있는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한 아들 출산에 얽힌 이야기다. 문제의 원인이 남편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져야 했던 여인네들의 아픔을 다루면서 인습에 얽매였던 조선 사회를 보여준다.

3편 <금중비색>은 가장 재미있는 에피소드였다. 임금의 잠자리를 지키는 상궁을 통해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망마저 통제하려는 궁궐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고 싶은 상궁들의 욕망을 연대라는 무기를 통해 보여주면서 스토리를 아주 극적으로 끌고간다. 

 

사극이라 하더라도 지시하는 공간은 바로 현재의 모습일 것이다. 과거 조선시대의 패습에 관한 스토리가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당대가 여전히 그 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의 무의식적 반영일 것이다. 너무 익숙한 소재라 자칫 지루해지거나 유치해질수 있는 스토리지만 신상옥 감독은 단편이라는 장치를 통해 빠른 이야기 전개와 편집을 활용하며 속도감을 유지한다. 무엇보다 각 에피소드마다 절체절명의 처지에 놓인 주인공의 고뇌가 설득력있게 전달되고 있다. 남정임, 김지미, 최은희를 비롯 황정순, 남궁원, 신영균, 주증녀, 사미자 등 초호화 배역진들의 연기도 무척 좋았다.


개봉 : 1969년 5월 2일 명보극장

감독 : 신상옥

출연 : 최은희, 김지미, 남정임, 황정순, 남궁원, 주증녀, 사미자, 신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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