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여전한 그의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 있긴 했지만 이전의 작품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항상 그의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관계의 불편함을 호소했다. 주인공들은 항상 서로를 욕망하지만 편안한 현실에의 안주라는 유혹에 굴복하고 제대로 된 관계는 형성되지 못한다. 어찌보면 현실이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을 방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현실의 안주를 선택한 인물들은 어찌나 졸렬하고 비열한지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내가 저런 인간이 아니기를 기도하게 된다.) 이전의 작품들에서 홍상수 감독은 주인공들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관점을 제시했지만 에서는 자신의 관점이 인물의 관계에 앞서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는 제목에서부터 여자가 왜 남자의 미래인지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겠지만 ..
친일파 영화다 아니다라는 공방속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래서 그 기상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간판을 내려야 했던 영화 을 드디어 보았다. 일제 식민지 시기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였다는 박경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다 보니 민감한 민족주의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었나 보다. 하지만 나는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라는 수식어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 을 만든 윤종찬 감독의 2번째 프로젝트라는 것에 더 흥미가 있었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내 생각에 윤종찬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 중의 하나였고,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거의 박찬욱과 맞먹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90억이 들었다는 이 대작은 극장에서 겨우 1주일만에 막을 내렸고, 팬을 ..
김대승 감독의 '가을로'를 재밌게 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다. 두번째는 영화가 끝날 때 내가 좋아하는 스토리였다고 깨닫는 것이다. 나는 어쩔수 없이 헤어지고, 그리워하는 따위의 스토리를 좀 좋아하는 편이다. 어릴때는 신파적인 요소가 섞여들어가면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모르기도 했다. 정윤희가 나오는 뻔한 스토리 '사랑하는 사람아'는 눈물, 콧물 짜내며 봤던 기억도 난다. 물론 이젠 능글맞아져서 세련된 신파여야만 마음을 움직이긴 하지만. 어쨌든 뻔하니, 안뻔하니 해도 멜로드라마는 심금을 울리는 구석이 분명히 있는 거 같다. '가을로'는 치유의 과정을 담은 영화다. 그리고 그것은 용서와 받아들임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애인을 죽음으로 몰았다고 자책하는 현우는 죽은 애인이 남..
허진호 감독의 호우시절을 DVD로 봤는데, 아주 재미있었다.이 영화엔 특히 내가 좋아할만한 장면들도 많았다.외출과 행복이 그저그래서 이 영화가 좀 더 좋았던건지아니면 외출과 행복이 그저그래서 별 기대없이 봐서 그런지어쨌든 봄날은 간다에서 느꼈던 감성을 비슷하게 느꼈다.봄날은 간다는 내가 광화문에서 회사를 다니던 시절퇴근 후 혼자 스타식스 정동 극장에서 본 영화였다.마침 그때는 아내를 처음 만나서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이 한가득일 때였다.그때 아내는 대전에 살고 있어 얼굴은 두어번 본 상태였고서로 호감만 간직한 채 이메일만 몇 번 주고 받고 있는 중이었다.영화를 다 본 늦은 밤. 극장문을 나섰다.영화에 매료되어 나의 감성은 상승일로에 있었다.광화문 5호선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때마침 바람이 내쪽으로 불었고늦..
상훈은 초라한 단칸방 출입문 옆 담벼락에 기댄 채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담배를 피운다.잠시 후 그는 ‘그’ 초라한 문을 열고 들어가소주를 마시고 있는 아버지에게 폭력을 휘두른다.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다음 장면은또 다른 초라한 방에서 자고 있는 상훈의 모습이다.그가 아버지를 폭행한 것은 꿈이었을까? 어찌보면똥파리는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던 상훈의 소망이개인적으로 좌절되는 영화이면서과거의 나쁜 아버지들과 미래의 나쁜 아버지에 대한불안을 환기시키는 영화이기도 하다.영화속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은 왜 하나같이 폭력적인가?감독은 그 원인을 군사문화가 지배했던 시절에서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직접적으로야 연희의 아버지가 베트남전 참전 군인으로나오는 것일 뿐이지만, 그들은 이미 권위주의적 군사문화..
我를 버리고 대의명분을 위해 뛰고 나르고 구르는 멋진 것들.국가와 국민을 위기에 처하게 하는 자들을 체포하여 수갑을 채우는 멋진 것들.그래서 뭇사람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어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주인공인 것들.은 바로7급 공무원이라 불리기도 한다는 국가정보원 소속의 요원들이다. 하지만 그들은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항상 대기 3분전인 상황이라진득한 눈빛 교환하고 막 작업 들어가기 3분전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도바로 세운 거 내려놓고 바람같이 뛰어 나가 범인의 손목에 수갑을 채워야한다.그러다보니 사랑에 수갑 채우기는 오시마 빈 라덴의 손목에 채우기보다어렵게 되고 말았다. 신태라 감독은 관객들에게 이미 익숙한 할리우드 첩보영화의 컨벤션을모두 가져온다. 특히 7급 공무원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트루 ..
데블스의 첫 서울 데뷔 무대에서 데블스의 리더이자 싱어인 상규(조승우)는 처음 들어보는 생경한 사운드에 반응이 없는 관객들을 향해 어리광섞인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다같이 불러요" 다같이 불러요. 나는 이 대사가 이 영화의 전부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다같이'라는 말속에 숨어있는 것은 무엇일까?그리고 그 대사와 함께시대적으로 70년대와 음악적으로 70년대가 마주한다.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싸우고 화해하고 어깨동무하고 무너졌을까?최호 감독은 70년대가 '다같이'라는 문구로 종횡무진 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타이틀과 함께 제시되는 화면은 70년대의 대표적 개발의 이미지를 전시한다.'다같이 잘 살아보세'라는 신성불가침의 어휘는 확장되고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면서 개발독재/유신의 뿌리가 되었을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