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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감독의 호우시절을 DVD로 봤는데, 아주 재미있었다.

이 영화엔 특히 내가 좋아할만한 장면들도 많았다.

외출과 행복이 그저그래서 이 영화가 좀 더 좋았던건지

아니면 외출과 행복이 그저그래서 별 기대없이 봐서 그런지

어쨌든 봄날은 간다에서 느꼈던 감성을 비슷하게 느꼈다.

봄날은 간다는 내가 광화문에서 회사를 다니던 시절

퇴근 후 혼자 스타식스 정동 극장에서 본 영화였다.

마침 그때는 아내를 처음 만나서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이 한가득일 때였다.

그때 아내는 대전에 살고 있어 얼굴은 두어번 본 상태였고

서로 호감만 간직한 채 이메일만 몇 번 주고 받고 있는 중이었다.

영화를 다 본 늦은 밤. 극장문을 나섰다.

영화에 매료되어 나의 감성은 상승일로에 있었다.

광화문 5호선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때마침 바람이 내쪽으로 불었고

늦가을 바짝 마른 낙엽들이 내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때 그 기분... 그 낙엽소리... 말로는 표현 못할 정도로 좋았다.

영화속에서 유지태는 이영애에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얘기했지만

나는 그래도 사랑을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2주후 대전으로 가는 기차에 앉았다.


호우시절을 보았다.

대나무가 좋아졌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정우성과 고원원이 처음 만나는 두보사원의

대나무 숲길에서의 사운드와 시선과 스침과 재회의 장면이다.

그리고 문득 인서트되는

마치 한폭의 동양화처럼 촬영된 대나무 잎들.

앞에 있는 잎은 포커스가 맞춰져 있고

뒤에 보이는 잎은 포커스가 흐리고 더 작은 잎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바람에 날리는 대나무 잎사귀들과

그 잎사귀들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는

분명 그때 봄날은 간다의 대나무 숲 장면에서 들었던

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수줍은 미소를 머금으며 만나는

정우성과 고원원의 모습.

 

이렇게 감성이 풍부하게 연출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허진호밖에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마음에 들었던 영화...^^

 

개봉 : 2009년 10월 8일 

감독 : 허진호

출연 : 정우성, 고원원, 김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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