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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영화/미국영화

킬러스 The Killers

구름2da 2018. 8. 27. 00:18



로버트 시오드막 감독이 1946년에 발표한 필름 느와르 <킬러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느와르 영화중의 하나다.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을 각색했다고 하는데 무엇보다도 마음을 끄는 장면은 앤더슨(버트 랭카스터)이 자신을 죽이러 온 킬러들의 총알을 피하지 않고 순순히 맞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 쓸쓸한 표정이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거든”이라는 대사와 함께 버트 랭카스터의 강렬한 데뷔작은 그렇게 인상적이었다.


20여년 후에 돈 시겔은 같은 원작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시오드막의 영화가 보험조사원(?)의 시점을 통해 사건에 접근한다면, 돈 시겔은 직접 총을 쏜 킬러의 시점으로 사건을 전개해 나간다. 똑같은 내용이지만 시오드막의 영화에 대한 리메이크가 아니므로 또다른 색다른 면이 많은 영화다. 무엇보다도 감성적인 부분들이 많이 제거되어 있어 보다 하드보일드한 터치가 강한 작품이 바로 64년에 발표된 돈 시겔의 <킬러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을 끄는 건 쟈니 노스(존 카사베츠)의 쉐일라 파(앤지 디킨슨)에 대한 순애보다. 단지 돈 시겔 감독이 그 감정의 표현에 그다지 심혈을 기울인 것 같진 않고, 게다가 존 카사베츠의 생김새로는 버트 랭카스터에게서 느낄 만한 우수가 별로 느껴지지 않아 심연에서 올라오는 감성을 자제하게 만들지만 여전히 남자 주인공의 순애보는 가슴을 적셔온다. 단, 46년작을 먼저 봤을때 이런 감성은 더 섬세하게 전해져 올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돈 시겔의 영화에서는 감성적인 면 보다는 좀 더 냉혹한 현실의 단면만을 보게 될 확률이 클 것 같다.


쟈니를 죽인 킬러 찰리(리 마빈)는 그가 죽음을 피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점에  의문을 가진다. 전문 킬러인 그의 경험상 이런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쟈니가 백만달러를 훔쳤었다는 것을 기억해내며 그 돈의 행방을 찾기로 결심한다. 이 씬부터 본격적으로 감성과 하드보일드가 나뉘어 지고 있는 것 같다. 46년작이 앤더슨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밑바탕에 깔려있다면, 64년작은 쟈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여타 인물들 사이에 들어설 여지가 없다. 찰리가 쟈니의 죽음에 대한 미스테리를 파헤치는 건 그가 훔쳤다는 백만달러의 돈 중 50만달러라도 있으면 당장 일을 때려치우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돈 시겔 감독은 이것저것 미사여구를 채우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사건은 일사천리도 진행되며, 인물들에게 인간적인 면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는 인물들에게서 어떤 도덕적인면을 기대하지 않는다. 어차피 현실은 냉혹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도 냉혹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결국 그렇지 못한 인간에게 남는 건 희생자라는 역할 뿐이라는 걸 실감나게 보여 줄 뿐이다. 46년작이 보험사를 통해 사회의 냉혹함을 살짝 드러내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그 사악함을 이식한 돈 시겔의 영화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냉혹한 인간, 냉혹한 사회속이라도 억울한 희생자에 대한 연민은 가장 중요한 테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이 존재할 가치는 없다. 돈 시겔이 영화(디제시스)속에서 그런 감성을 허용하지 않는 건 의미의 강화를 위한 수단일 것이다. 백만불의 돈을 쫓던 쉐일라와 브라우닝의 죽음. 그 돈가방을 가지고 나오다 죽는 찰리의 욕망은 허공에 흩어지는 돈처럼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쓰지 못할 돈에 대한 집착은 신이 이 세상이 내놓은 가장 어리석은 자의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멀리서 도착하는 경찰차와 싸이렌 소리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공권력에 대한 조롱일 것이다.


결국 서로 총질을 해대며 사악한 것들이 죽어주지 않는 한 선의의 희생자는 계속 만들어질 것이고, 상황이 이렇다보니 돈 시겔이 몇 년 후에 해리 캘라한이라는 무지막지한 형사 캐릭터를 창조한 것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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