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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영화/미국영화

대결 Duel

구름2da 2018. 8. 27. 00:11



참 대단한 재능이구나 싶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데뷔작인 TV영화 대결 Duel을 보고 난 후

생각난 단 하나의 단어였다.


그렇다고 이영화가 내게 무척 재미있었다거나

감동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메시지가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재미있었지만 흥분할 정도는 아니었고

분명 설득력있는 메시지는 느꼈지만 감탄할 만한 것은 못된다.


하지만 영화라는 것이 묵직한 이타적 메시지로만 이뤄진 것도 아닌데다가

90분을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역동성속에는 분명 감독의 역량이 녹아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입으로 욕하면서 느끼는 재미가 아닌 편안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스티븐 스필버그는 첫 장편 데뷔작에서 얼마나 놀라운 컨트롤을 보여주는가?


대결은 데이빗이라는 남자가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원인 모를 거대한 트럭의 추적을 받고 생명을 위협을 느낀다는 내용이다.


장편데뷔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어떻게든지 그것을 잡아야 하고, 게다가 관객에겐 재미를.

제작자에겐 재능과 머니를 보여주며 업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초라한(?)

시놉시스로 연출하겠다고 덤벼들었을 땐 이미 스필버그의 머릿속에 다이나믹한 스토리보드가 이미 그려져 있었을 것 같다.

뼈와 살을 붙여내는 것은 오로지 감독의 역량에 달린 문제인 것이다.


시점쇼트로 시작하는 오프닝과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되기 까지 시시껄렁한 라디오 방송만

들어야 하는 자칫 재미없을 시퀀스지만 다양한 카메라 앵글과 고속도로의 풍경만으로도

라디오 방송에 귀가 열리고 화면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특히 세탁소 전화장면에서 보여주는 화면구성과 대화는 주인공이 처해있는 상황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한 장면으로 무척 인상적이었다.


더군다나 이유도 없이 달려드는 거대한 트럭과 맞닥트리고 난 이후의 긴장감 조절의 타이밍은 무척 뛰어난 것 같다.

끝까지 트럭이 왜 그러는지에 대한 설명을 자제함으로써 서스펜스의 강도를 높였고,

심리적으로도 ‘내게도 저런 일이 닥칠 수 있다’는 현실감을 구현하는데도 성공해 관객의 심리도 쥐락펴락하는 솜씨도 좋았다.

이런 불충분한 설명이 어떤 영화에서는 자칫 지루한 상황으로 발전해 오히려 관객의 몰입을 졸음으로 방해하지만,

스필버그는 트럭의 공격과 데이빗의 의구심등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긴장감을 높이며 영화의 완성도에 공헌하고 있다.

사실 이건 재능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트럭이 밑도 끝도 없이 달려드는 영화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스필버그의 데뷔작에는 이후 그의 영화를 관통할 스타일의 모양새도 살아 있지만

더불어 그의 세계관을 훔쳐볼 수 있는 단초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속에서 이유 없이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모든 사건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듯 영화 대결에서도 그 원인에 대해 주목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나는 트럭의 첫 번째 공격시점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라디오에서 시시껄렁하게 나오고 있던 내용은 남편이 가사를 돌보고 아내가 돈을 벌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 상황을 냉소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남자에 대한 내용이다. 이와 더불어 세탁소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건 데이빗이

아내와 아이들의 존중을 받는 인물이 아님을 알게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데이빗이 그들의 안락을 위해 지금 일하러 가는 중이고 사건에 부닥친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열린 세탁기 문의 동그란 모양안에 갇혀 있는 데이빗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그 미장센은 마치 데이빗을 점점 조여들어오면서 그를 가둬버릴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데이빗은 당대 남성의 모습이기도 했을 것이고 이는 또 한번 현실감을 획득하는 장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쯤에서 좀 더 시야를 확장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시기적으로 1970년대 초반은 서구에서 68혁명이후 새로움의 물결이 넘쳐 흐르던 시기였다.

히피가 등장했고 전통적 가치관은 거부당하기가 일쑤였다.

이 상황에서 가장 전통적 가치관의 하나일 가부장주의는 타도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위기감이 불러온 공포의 상황은 트럭이라는 거대한 상징물로 대체되었고,

그것은 이유도 없이 데이빗이 차지하고 있던 백인중산층남성이라는 가장 우월한 지위와 공간을

생각해보면 아무 이유도 없이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나를 희생하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내게 왜?”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 하다.


그것은 또한 스필버그 자신이 공유하고 있는 세계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그는 당시 불어 닥쳤던 새로운 물결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동조하더라도 쓰나미처럼 밀려와 엎어버리자고 하는 급진성을 거부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점진적 변화가 절실하다.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은 벌어야 하고 또한 새롭게 적응하기 위해서도 변화는 점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으면 지지기반은 눈깜짝할 사이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안정을 파괴하는 급진성은 괴물의 모양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가 보다.


어쨌든 나는 이 영화가 신인감독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치에 근접한 영상을 보여주었다고 생각 한다.

많은 신인감독이 있지만 스티븐 스필버그는 소수의 재능을 타고난 신인감독이었음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영화는 편안하다. 그는 절대 당대의 질서를 넘어서려 하지 않는다.

시대에 저항하려는 욕심도 없다. 시대가 바뀌면 다시 적응하고, 또한 가장 보편적인 가치관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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