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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스 다신 감독의 <밤 그리고 도시>의 주인공인 해리 파비안(리차드 위드마크)은 그 능글능글 맞고 좋은 입담에 머리 회전도 빠르고 수완도 있고 용기도 있고 한마디로 성공할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법. 이 친구가 한탕을 노리는 나쁜 버릇이 있다는 것. 하긴 많은 느와르 영화의 주인공이 이 버릇 개 못줘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해리 파비안도 그 중 한자리 당당하게 차지할만하다 하더라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매력남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친구가 왜 성공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 하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둘이 잘 살고 싶어 고생하는 마음씨 좋은 여자 친구의 지갑이나 뒤지며 돈 몇 푼을 슬쩍하려한 놈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 아니면 이 험악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도 없이 사업을 시작한 돈 무서운지 모르는 맹랑한 인간이라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줄스 다신 감독은 조금 더 들어가 보자고 얘기하는 것 같다. <밤 그리고 도시>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돈에 관한 영화. 그리고 그 돈의 흐름의 유무에 관한 영화. 돈에 울고 웃는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그 밤에 해리 파비안이 달리고 달리는 이유는 약간의 돈 때문이다. 그래도 그 돈 몇푼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가난한 여친의 돈 몇푼을 슬쩍 하는 파렴치한 짓도 주저하지 않게 만들 정도이다. 이렇게 시작된 영화는 모든 관계망이 돈과 연관되어 있다. 메리(진 티어니)가 돈을 빌리기 위해 찾아간 이웃집의 남자는 자신이 만든 은행모형의 상자에서 돈을 꺼내 준다. 해리가 일하는 클럽의 사장 노세로스와 아내 헬렌의 관계는 돈이라는 매개를 통해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다. 레슬링 에이전트 크리스토(허버트 롬)는 아버지 그레고리우스의 프라이드를 무시하면서 돈이 되는 레슬링을 하고 있고, 해리가 그레고리우스의 프라이드를 무기삼아 크리스토와 경쟁하려는 이유도 돈 때문이다. 노세로스가 아내 헬렌을 붙잡기 위한 수단도 돈이며, 헬렌이 남편에게 벗어나기 위해 해리를 이용할 때 사용하는 것도 돈이고, 궁지에 몰린 해리가 숨을 곳이 없는 이유도 돈이며, 결국 그것은 해리에게 비극적 운명을 선사하기에 이른다.

 

밤에 교환되는 돈은 낮에 교환되는 돈보다 좀 더 어둡고 음험함을 풍기지만 그 밤의 돈이 또한 도시를 만들어내고 있는 한부분이다. 밤과 도시는 느와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아이콘이며 그것이 풍기는 이미지는 비정함이다. 그리고 줄스 다신 감독은 바로 그 한복판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한 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달리고 달리던 해리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또 달리고 달린다. 하지만 이 번 달리기는 성격이 다르다. 여친의 지갑이라도 슬쩍해 보려던 달리기는 여친의 지갑을 채워보려는 안간힘의 달리기로 변한다. 그런데 아뿔싸... 해리의 죽음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머리회전 빠르고 입담 좋은 매력남 해리는 메리의 지갑을 채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결국 해리는 깨달을 기회조차도 잃어버렸다. 이게 어리석은 인간의 운명인가 보다.

 

처음엔 진 티어니가 지명도에 비해 몇장면 나오지 않는 역할을 맡은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현명한 선택을 했다. 그녀가 연기한 메리는 영화가 말하는 비정함을 구원해주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해리역을 맡은 리차드 위드마크는 그의 필모중에서 혹시 가장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연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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