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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영화/유럽영화

도둑들 Ladrones

구름2da 2018. 8. 26. 23:37


자이메 마르께즈 감독의 2007년 작품 도둑들을 별 기대없이 보다가 예상외로 엄청나게 재미가 있었다. 내용도 좋았지만 전체적으로 쓸쓸한 감정을 유지하는 톤과 슬로모션과 클로우즈업을 적절히 활용한 인물의 심리묘사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남자주인공을 맡은 (영화속에서 이름이 없었던듯... 기억이 없다.) 후앙 호세 발레스타의 외모도 이 영화의 쓸쓸한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 들어갔다는 생각이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두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소매치기 청년(막 우리나라 나이로 20살이 된 듯하므로) 의 엄마 찾기 여정.

두 번째는 소매치기 청년의 사랑 찾기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시작하면 블루톤의 화면에 어린시절 엄마와 함께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하는 청년/아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완벽한 파트너쉽(엄마가 지갑을 슬쩍하면, 청년/소년이 받아들고 내빼는)을 자랑하지만 잠복근무 중이던 형사에게 엄마가 잡혀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블루톤과 슬로모션은 영화의 정서를 단번에 드러내는데, 이는 청년/아이의 트라우마가 되어 영화전체를 장악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관한 영화인 셈이다. 이는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다시 한번 동일하게 반복되는데, 죽어가는 청년의 마지막 회상은 프롤로그에서 제시되었던 순간으로 되돌아가서 엄마가 잡혀간 후 혼자 지하철에서 내려 쓸쓸히 출입구로 올라가다 입구에 서있던 누군가의 손(엄마의 손)을 잡는 것으로 이후 엔딩타이틀이 흐른다.

 

이후 아이가 청년이 되어 보호소에서 배운 미용기술로 직장을 잡고 착실하게 일하는 모습으로 시작한 영화는 CD를 훔치는 소녀(청년과 동갑쯤으로 보이므로 숙녀라고 해야하나, 역시 이름이 없었거나 기억나지 않음으로해서 그녀로 지칭하기로 한다.)를 발견하고 그녀가 경비원에게 발견되려는 순간 그 위기에서 구해줌으로써 만나게 되는 과정을 제시함과 동시에, 청년이 어머니가 살던 지하방에서 살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머니가 살던 방이 어두컴컴한 지하방이라는 설정과 그 방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모양으로 봐서 그 방은 어머니의 자궁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 속에서 청년은 어머니가 만들어놓은 소매치기 기술을 익히는 마네킹을 발견하고 다시 기술을 연습해보기도 한다. 어머니가 부재한 상황의 어머니의 자궁은 그에게 감정적으로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지는 못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감독의 의도는 그 자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으로 보여 진다. 아이가 청년이 되는 과정은 자궁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일테다. 그것에서 실패했을때 세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으로 돌변한다고 말하고 있는 듯 싶다.

 

청년의 비극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소매치기 밖에 없다는데 있을 것이다. 취미로(?) 도벽이 있는 그녀와의 만남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은 소매치기뿐이다. 그들의 사랑이 깊어가면서 소매치기의 위기도 같이 나타난다. 엄마를 만날 수 있는 방법과 그녀와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소매치기는 모두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 소매치기를 거부할 때 청년은 자궁에서 벗어나는 것에서도, 사랑을 유지하는 것에서도 운명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찰서에서의 에피소드도 꽤 의미심장하다. 소매치기 과정에서 청년과 그녀가 붙잡혔을때 경찰은 그녀에게 재미로서의 소매치기를 그만둘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그녀도 재미로서의 소매치기를 그만두기로 한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소매치기를 거부하면 청년과의 연결고리가 사라진다. 그녀는 소매치기라는 연결고리 없이도 사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청년을 육체적으로 받아들이지만, 곧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는 다시 소매치기를 하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청년과의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임을 그녀는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청년은 그 연결고리를 끊음으로써 그녀와의 사랑을 완성시키려 한다,

 

영화에서는 청년과 그녀의 소매치기 장면을 아주 세심하게 묘사한다. 훔치는 과정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관심은 소매치기 자체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갑과 지갑을 주고 받는 손가락 끝의 미묘한 떨림과 그로 인한 감정의 교류를 클로즈업과 슬로모션을 통한 시선 주고받기로 완성하는 장면들은 그 어떤 섹스씬보다 에로틱하게 처리하고 있다. 과거 꼬마였던 청년이 어머니가 소매치기한 지갑을 받아내는 것은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이었고, 현재 청년이 소매치기한 지갑을 그녀에게 주는 행위는 성적교류로서의 사랑의 확인인 셈이다.

  

청년은 엄마와의 만남에 성공한다. 이미 엄마는 과거에 체포되면서 친권을 포기한 상태다. 하지만 자궁으로의 집착과 엄마에 대한 사랑의 확인 때문에 청년은 엄마와의 만남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소매치기라는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에서 엄마는 청년을 외면한다. 그제서야 청년은 소매치기라는 방법은 사랑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닳았던 것일까? 어쩌면 엄마가 친권을 포기한 것도 청년이 소매치기를 하지 않고 살길 바랬기 때문이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엄마 역시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소매치기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를 만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소매치기가 동반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은 청년의 어쩔수 없는 비극을 더 도드라지게 만든다.

 

엄마가 소매치기를 통한 사랑의 소통을 거부하며 자식에 대한 사랑을 쌓으려 했다면, 청년은 그녀가 훔친 지갑을 받길 거부하며 사랑을 완성하려고 한다. 엄마의 지하방을 불태우며 자궁에서 벗어나고, 그녀의 지갑을 거부하면서 혼자가 된 청년은 소매치기라는 스스로의 표현수단을 상실하며 존재감마저 잃어버린 것일까? 청년은 살해됨을 거부하지 않는다.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조용한 곳에서 스스로 죽음이 다가오길 기다린다. 그리고 그 환상속에서 영화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엄마가 체포된 후 청년/꼬마는 혼자 쓸쓸히 계단을 올라간다. 그리고 계단 끝 밝은 곳에서 엄마/그녀의 손이 보인다. 그 손을 잡는 꼬마/청년... 깨끗한 손은 꼬마/청년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었을까? 외로운 가슴을 진정한 사랑으로 품어주는 손이었을까? 그 손은 소매치기를 하며 지갑을 통해 한다리 건너오는 손이 아니라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손이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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