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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이 왜 플랑드르 일까 생각해 보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프랑스의 시골이 플랑드르라는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프랑스에서는 플랑드르라는 말이 시골, 비산업화 같은 뜻으로 일반적으로 이미지화 되어 있는 곳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프랑스인들에게 플랑드르라는 말은 순수, 고향, 모성 등등의 늘 따라다니는 이미지도 더불어 생각해 낼 수 있다고 본다면 플랑드르라는 말은 일종의 ‘마음의 고향’쯤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놓고 보니 문제가 심상치 않다. 이 ‘마음의 고향’에 살고 있는 이제 20대를 지난 듯한 젊은이들의 생활은 무척 무미건조해 보이기 때문이다. 플랑드르가 프랑스의 시골을 상징한다면 이 젊은이들은 프랑스의 시골 젊은이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을텐데, 이 젊은이들에게 희망은 저 먼나라의 이야기이고, 심지어 희망을 꿈꾸지도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없다니, 뭐하나 부족한 것이 없을 듯한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희망이 없다는 것은, 앞으로의 미래가 희망이 없다는 것은 아닐까? 주인공인 앙드레와 블론데는 갑자기 전쟁터로 떠나기로 한다. 왜 그들이 전쟁터로 가려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감독은 전혀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거창한 거대담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인적인 가치관에 근거한 것도 아니다. 영화는 무척 권태로워 보이는 세 인물을 보여주는 것에 영화의 반 정도를 할애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전쟁은 권태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
그런데 뭔가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면 희망이 없던 앙드레와 블론데가 전쟁터에서 만나는 상황은 그래도 겉으로는 평화롭던 플랑드르와는 정반대이다, 푸르름이 지나치게 강조된 플랑드르의 시골과 황량한 사막이 강조되는 사막의 전쟁터는 교차편집 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한다. 결국 앙드레와 블론데가 마주치는 전쟁이라는 것은 어린이들과의 총싸움, 강간, 이어지는 복수라는 구도로 짜여져 있다. 부대원들은 점점 사람 죽이는 일에 무감각해져 간다.
영화속에서 바르브의 섹스와 아랍여성에 대한 강간은 문화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서구에서 살고있는 바르브의 섹스는 유희, 대체된 대화의 방식, 관계를 만들어내기로서 방식이라면, 아랍여성에게 섹스는 목숨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앙드레의 동료들은 처절한 응징을 받는 것일 것이고, 점점 대화가 단절되고 육체만 살아 움직이는 황량한 관계의 단절속에 놓인 바르브의 고통이 정신병으로 표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젊은이들이 무모하게 전쟁터로 향하게 하고 총알받이로 전락시키려고 하는 사회가 더 문제일 수 있다. 사막에서 하는 전쟁이라면 당연하게도 미국이 일으키고 그에 동조한 강대국들이 벌인 이라크전을 상상하게 된다. 강대국들이 시골의 젊은이, 교육을 덜 받은 젊은이들을 희망에서 소외시키며 전쟁터로 내몰고 있을때, 당사국인 사막의 젊은이들 역시 강대국의 횡포로 희망을 상실한 채 총알받이가 되어야만 하는 것. 결국 같은 운명의 그들의 모습. 이것이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희망과 미래가 없는 두개의 지옥을 브루노 뒤몽 감독 그저 보여준다.하나는 전쟁터, 또 하나의 고도 자본주의 사회.
인간성의 파괴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의 회복에 대한 희망이 브루노 뒤몽 감독이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앙드레는 어린이의 가슴에 총을 쏘고, 강간을 하고, 친구가 죽도로 내버려두고 혼자 도망치지만 유일하게 살아서 돌아온다. 그 원죄를 안고 이제 앙드레와 바르브는 다시 희망을 꿈꾸어 볼 수 있을까? 영화는 그럴것이라는 문을 열어두며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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