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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쉬 감독의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보고 나니 여운이 길다. 이토록 담담한 러브스토리라니. 이렇게 아름다운 영상미라니...

 

모로코와 미국에서 떨어져 살고 있는 뱀파이어 부부 아담(톰 히들스턴)과 이브(틸다 스윈튼). 현재 아담이 인디 뮤지션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좋더라. 사실 커트 코베인이 조금 생각났다. 하지만 그들이 역사적 인물들의 예술적 성과에 영감을 주면서 살아왔다는 설정은 좀 진부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동생 에바(미아 와시코브스카)라는 캐릭터도 매력이 없어서 그 부분만은 좀 덜 신선한 피맛처럼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아담과 이브라는 뱀파이어 캐릭터와 함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촬영이 무척 탐미적이라서 모든 단점을 상쇄해 버리는 마법을 발휘하더라. 그리고 현대인을 좀비라고 표현하고, 이제 피조차 오염되었다는 타락한 현대인이라는 설정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대 비판이 짐 자무쉬가 이 영화를 만든 목적은 아닌 것 같았다.

 

이 영화는 그야말로 사랑 그 자체가 목적인 영화다. 순간적으로 불꽃이 튀고 마는 그런 사랑이 아니다. 그들은 수백년에 걸쳐 부부로 살아오고 있다. 이제 그들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들의 모든 감정과 친밀함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적 의미를 훌쩍 뛰어넘은 그들의 사랑은 love라는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적 의미의 정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랑을 뛰어넘고 한마저도 초월한, 표현하기 힘든 관조의 짙은 향기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구속하지 않지만 항상 서로를 위하는 것. 뱀파이어의 사랑은 결국 곰삭고 발효되어 향기로 남는 사랑인 것 같다. 아담과 이브. 몇 백년을 이어오며 만들어냈을 그들의 애정과 연대야 말로 바로 진정한 사랑의 종착지임을 자무쉬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제목은 중의적으로 보였다. 영원한 사랑을 그리고 있는 제목일수도 있다. 피를 공급해 주던 동료가 죽자 그들은 기아에 허덕이게 된다.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는 그들의 맹세는 위기에 봉착한다. 그리고 열렬히 사랑하는 연인들을 보고 그들을 영원히 살도록 해서 사랑을 지속시켜 주는 것으로 자신의 흡혈을 정당화하기로 한다. 하지만 아담과 이브에게 피를 제공하고 영원히 살게 될 그 연인은 진정 행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 지점에서 아담과 이브의 실수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 몇 백년을 이어오는 사랑이 아니라, 어쩌면 최인호의 수필에서 읽었던 한 구절처럼 주어진 만큼 인간의 삶을 살아낸 후 죽어서 사랑하는 사람의 옆자리에 묻히는 것이 더 행복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런 짧은 사랑이 인간적인 것 같고, 사랑의 지속이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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