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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의 단순직을 잃지 않겠다고 아둥바둥 버티는 소녀가 있다. 그녀는 쫓겨나지 않겠다고 도망가고 문에 매달린다. 필사적인 저항. 하지만 왜소한 몸을 가진 소녀는 그들을 이길 수가 없다. 수습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공장은 그녀를 차디찬 거리로 내몬다. 그녀의 이름은 로제타. 로제타는 다시 한번 생존의 위기에 직면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를 건너가는 그녀의 모습을 핸드헬드로 담아내는 카메라. 그 뒤의 장 피에르와 뤽 다르덴 형제의 시선이 그녀에게 머문다. 로제타는 생존하기 위해, 단지 살아가기 위해, 단지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쉼없이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제타에게 삶은 너무 힘들기만 하다.
저기 못사는 제3세계의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유럽의 선진국 벨기에에 살고 있는 소녀의 이야기다. 복지혜택이 잘 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로제타는 그 혜택의 회색지대에 걸쳐 있어 지원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엄마는 술 한잔이라면 몸 파는 것도 서슴치 않는 알콜중독자다. 작은 와플 하나와 삶은 계란 하나가 한 끼 식사다. 어디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소녀의 삶이 아니라고 했다. 유럽의 선진국에서 살고 있는 소녀의 삶이다.
장 피에르 & 뤽 다르덴 감독은 왜 로제타가 이렇게 힘들게 사는지 원인을 캐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삶이 선진국이라는, 복지국가라는 벨기에에서 조차 드물지 않다는 것을 그냥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음지, 숨기려고 하지만 숨겨지지 않는 생채기.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장 피에르 & 뤽 다르덴 감독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냉혹함이 아닌 피가 흐르는 인간의 심장에서 희망을 길어올리고 싶어한다.
그것을 드러내는 인물이 바로 리케다. 와플 가게의 종업원인 그는 로제타를 친구로 인정한 후부터 그녀를 돕기 위해,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삶에 지치고 희망을 상실한 로제타의 위악은 리케의 자리를 빼앗아 버리고 만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는 직장을 가지게 된 로제타. 하지만 고단한 삶에 죄책감이라는 무게가 더해지고, 사라진 엄마가 트레일러 앞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면서 모든 희망은 사라진다. 로제타는 가스를 틀고 침대에 눕는다. 죽으면 편안할까? 그런데 가스가 바닥이라 더 이상 나오지를 않는다.
로제타는 죽기 위해 빈 가스통을 들고 가스를 사러 간다. 빈 가스통이지만 너무 무겁다. 그녀에게 가해진 모든 삶의 고통이 이 가스통에 들어 있다는 듯 너무 힘겹게 그것을 들고 가는 로제타의 모습은 애처로워 볼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가스가 가득 찬 새 가스통은 더 무겁다. 이 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죽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리케는 그녀 곁을 계속 맴돈다. 살기도 죽기도 힘든 로제타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우는 것 뿐이다. 그래도 로제타는 리케를 배신했지만, 리케는 로제타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가득 채워진 가스통은 숨을 끊는 대신 숨을 쉴 수 있도록 음식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미니멀한 영화로 이렇게 거대한 메시지를 길어 올리는 감독은 대단하다. 장 피에르 & 뤽 다르덴 형제 감독은 그야말로 거장이다. 그리고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도 그랬듯이, 연대의 힘을 여전히 믿고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점점 냉혹해져 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불합리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연대밖에 없다는 듯 씩씩하게 나아가는 다르덴 형제를 지지하지 않을 수가 없다.
로제타와 리케가 토스트를 먹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후라이팬에 버터를 바르고 구운 그 초라한 식빵을 로제타는 마치 스테이크를 먹듯이 먹는다. 아마 로제타에게 그 식빵은 스테이크 만큼 귀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듯 다르덴 형제는 그 식빵을 나이프와 포크로 정성스레 썰어 먹는 로제타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1999년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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