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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의 2011년 작품 <폭풍의 언덕>. 히스클리프를 흑인으로 설정하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에밀리 브론테의 유명한 소설이라 내용은 익히 잘 알려져 있지만, 여류작가의 소설을 여성감독이 연출하면서 좀 더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게 해주는 면이 있다.
히스클리프나 캐시 같은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인물들이 모두 비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히스클리프의 욕망이전에 캐시의 아버지에게 일차적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그가 좀 더 친아들인 힌들리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었다면 힌들리와 히스클리프의 관계가 그렇게 나빠지지 않았을 수도. 그랬다면 히스클리프와 캐시의 사랑도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었을 테다. 물론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은 히스클리프를 원작과는 다르게 흑인으로 설정하면서 인종차별이라는 두 가지 구속을 설정해 갈등을 좀 더 강하게 표현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즉, 히스클리프는 두 개의 장애물을 넘어야만 캐시와의 사랑을 이룰 수 있는 셈이다. 이는 19세기적 감성에 21세기적 감성을 덧입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난관을 가뿐하게 뛰어넘는 원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쭙잖은 기독교적 휴머니즘이다. 캐시의 아버지는 크리스천이라서 히스클리프를 데려왔다고 말한다. 성경의 네 이웃을 사랑하는 말의 실천처럼 보이지만, 실은 겉으로 타인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욕심이 앞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크리스천이라는 허울이 모든 인물을 비극의 나락으로 밀어 넣은 셈이다. 결국에는 이 인물들의 비극에 가부장이 있는 듯 보이지만, 더 넓게는 서구 문명의 토대를 만든 크리스트교가 있는 셈이다.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이 여성이어서 그런가 남성 캐릭터를 좀 더 냉정하게 표현하고 있는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힌들리의 아들 역시 힌들리와 히스클리프처럼 살게 될 것이라는 걸 보여주기도 하는데. 크리스트교에서 시작된 가부장 사회의 비극을 끊어내지 못하면 되풀이된다는 걸까? 그게 21세기적 이데올로기인지도. 지독한 러브스토리 속에 그런 게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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