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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1980년대

타인의 방

구름2da 2020. 5. 6. 01:58

타인의 방

김문옥 감독의 <타인의 방>198011일 신정특선영화로 개봉되었다. 관계자들 사이에서 꽤 기대작이었던가 보다. 하지만 이런 기대작의 영화적 완성도는 솔직히 처참할 지경이다. 김문옥 감독은 죄송하지만. 내 기준에서. 몇 작품을 본 결과로. 한국에서 가장 영화를 못 만드는 감독중의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만하다고 생각한다. 데뷔작인 <타인의 방>부터 김문옥 감독은 영화의 기본이 제대로 안되어 있었구나 싶었다.(일개 영화팬의 의견일뿐이다.) 물론 당시 불황의 늪에 빠져있던 상황이나 한국영화계의 한계가 있었다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시나리오를 부실하게 만들지는 않을 터. 그러므로 김문옥 감독은 총체적으로 재능이 없는 감독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 최인호의 원작이 이렇게 허접할리는 없으니 결국 이것도 감독탓이리라.




민세영(이영옥)은 결혼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결혼식 날. 남편이 희대의 바람둥이임이 밝혀지고 구속되면서, 세영은 무작정 거리로 뛰어나간다. 이렇게 웨딩드레스 입고 거리고 뛰어나가기 한국영화 3부작이 있다. (타인의 방, 고속도로, 그대안의 블루. 더 있을수 있지만 기억나는 건 이정도)


도망가다 들어선 극장. 간판을 그리는 장원(김추련)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얌전한 신사 같았던 장원은 그날밤 세영을 범한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세영이 거부하자 고향으로 가는 차비를 주고 떠나버린다.




세영은 고향 강릉으로 간다. 어머니는 죽어가면서 여자의 순결은 무엇보다 중요하며, 정조를 꼭 지키라며 족두리를 남기고 죽는다. 이렇게 볼 때 김문옥 감독은 고전적인 순결 신파 레퍼토리에서 벗어날 생각이 전혀 없음을 일치감치 알려준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는 첫 작품을 만든 신인 영화감독으로서의 패기도, 파격도 없이 이전 3류 영화감독 선배들이 남겨놓은 진부한 클리쉐를 반복한다.


한 한두어달만에 서울에 올라온 세영. 그사이 장원은 건설회사 선전부장이 되어 있는데다, 재벌이라할 그 집 외동딸과 사귀고 있다. 어떻게 부장이 되었는지? 재벌집 딸은 극장 간판쟁이인 장원과 어떻게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냥 그 사이에 사랑에 빠진 것이다. 도도한 재벌집 딸이 간판쟁이와 사랑에 빠질려면 장원이 뭔가 매력덩어리여야 하는데 그게 뭘까? 영화속에서 그걸 표현하지 않으니 도통 모르겠다. 더군다나 세영은 한번 잔 남자와 그것도 한번 거절했던 남자와 평생 살겠다며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오는 거하며. 장원은 사랑한다고 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냉정하게 세영을 버린다.




세영이 처량하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갑자기 왠 잘생긴 남자가 접근한다. 동민(이영하)이다. 이 정도는 인정해 줄 수 있다. 그럴수도 있지. 동민은 갑자기 세영에게 자기 집에서 살아라고 한다. 세영은 이제는 자신이 장원에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한다. 곧 세영은 장원이 있는 회사에 사장비서로 취직한다. 취직하기 참 쉽다. 곧 자신의 정체를 사장딸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자, 장원은 항상 세영을 사랑했다며 순정남으로 돌변한다. 사장 딸과 헤어지고 회사도 그만둔다.



동민은 세영을 사랑한다며 모든 걸 이해하겠다고 한다. 세영은 장원에 대한 복수는 성공했다고 생각하는지, 이제 동민에게 매달린다. 그런데 갑자기 동민이 캐나다로 떠나버리겠단다. 장원이 있으니 행복하라며, 나중에 불행해지면 다시 자기를 찾으라면서, 이게 뭔 개뼉다구같은 소린가. 장원은 사랑하는 세영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림을 남기고 죽어버리고, 홀로 된 세영은 동민이 남긴 아파트 열쇠를 멀리 던져버린다.



그래서 세영은 달라졌는가? 아무것도 없다. 이 영화에서 사건은 갑작스럽고 우연하게 일어났다 갑작스럽게 종결된다. 세영이 복수를 했는지 안했는지도 영화상에서 표현이 애매하다. 아파트 열쇠를 왜 버리나. 아깝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행복이 왔는가? 그녀는 도도하게 아파트 열쇠를 던져 버리지만 관객은 세영에 대해선 여전히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이런 영화라니. 세영을 연기한 이영옥의 열연만 아깝다.


개봉 : 1980년 1월 1일 서울극장

감독 : 김문옥

출연 : 이영옥, 이영하, 김추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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