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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해병 - 이만희 감독의 한국전쟁영화의 걸작

 

거장 이만희 감독의 1963년 작품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첫 시퀀스에 나오는 전투장면은 너무나도 박진감이 넘친다. 흡사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초반부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물론 헐리우드의 물량 공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만희 감독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최고의 효과를 내면서 찍었다는 생각이 들고 보면 오히려 스필버그의 연출보다 더 좋아서 숭고함마저 느끼게 한다.

 

이후 이어지는 북한군과의 대치상황. 재미있는 것은 이만희 감독은 북한군을 그다지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고 보여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영화 후반부는 북한군이 아닌 중공군과의 전투를 보여준다. 그러다보니 이만희 감독은 동족인 북한군을 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주저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더불어 UN군만 받는다는 클럽을 부수는 것을 봐도 이만희 감독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꽤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북한군을 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어떻게 보면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끼리의 전쟁이 아니라 외세에 의한 전쟁이었다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 1960년대에 이런 영화를 뚝심 있게 만들 수 있는 그의 패기가 정말 멋지다.

 

어쨌거나 그렇게 북한군과의 교전을 보여주고, 어린 꼬마 소녀 영희를 만나게 되는 과정. 전쟁 중 민간인 학살 현장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만큼은 참 잔인하게 보일 정도로 미장센을 꾸미면서 전쟁의 참상을 강조한다. 이 시퀀스에서도 역시 북한군을 변변히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그 학살이 북한군의 소행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런 짓을 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라는 행위에 대한 책임론에 대해 묻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 경익의 여동생 숙희의 시체를 발견하는 대목부터는 기본적으로 신파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신파적 감정은 당시 흥행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관객들에게 이런 애절한 장면은 감정적으로 파고들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영희를 데려다 키운다는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로 신파적 감정이 묻어나는 부분이다. 영희는 경익에게 숙희의 대체적 존재이긴 했지만, 모든 해병들의 마스코트이며, 전쟁속에 피어나는 인간애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전쟁속에서 피어나는 전우애와 함께 이런 인간애를 묘사함으로써 이만희 감독은 전쟁 속에서도 인간의 감정은 변하지 않으며, 전쟁이라는 그 상황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며, 반전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반공의 범주에서 보자면 반공영화가 아니라고 할 정도로, 이 영화는 적으로서의 북한이라는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빈약한 이분법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역동적인 화면을 통한 전쟁장면의 스펙터클도 놓치지 않는 훌륭한 연출을 보여준다.

 

마지막 시퀀스가 장엄하다. 중공군이 떼거지로 몰려들고 1분대는 마지막까지 저항한다. 중공군이 쳐들어올 때 그들의 막연한 표정을 잡아내는 카메라가 인상적이다. 주인공들이 한명씩 한명씩 죽어 갈 때 마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이 꼭 필요한가라는 의문부호를 표시하는 분대장에 감정이입이 된다. 그렇게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반공이 아닌 강한 반전영화로 남는다. 당시 권력이 요구했던 반공으로 접근하지 않고 반전으로 접근했다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고, 젊은 감독 이만희 반골기질이 눈에 두드러져 특히 멋진 영화가 된 것 같다.

 

개봉 : 1963년 4월 11일 국도극장

감독 : 이만희

출연 : 장동휘, 최무룡, 구봉서, 이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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