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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오 추를리니 감독의 1961년 작품 <가방을 든 여인>이 보고 싶었던 단 한가지 이유는 바로 끌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때문이다. 물론 옛날 FM라디오 영화음악실에서 자주 틀어 주던 주제음악도 기억 속에서 맴맴 돌기도 했지만, 몇 년 전 <부베의 연인>을 보고 난 이후 끌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아름다운 외모는 정말 잊을 수가 없었다. 역시나 <가방을 든 여인>에서도 끌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너무 예쁘더라. 너무 아름다워서 정말 그녀에게 푹 빠져버릴 것 만 같더라. 더군다나 가슴을 강조한 의상, 잘록한 허리, 아름다운 다리를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풍성한 곡선의 치마자락. 거기에다 약간은 백치미를 강조한 농염함이라니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 로렌조(자크 페랑)가 아이다(끌라우디아 카르디날레)를 처음 본 순간 느꼈을 그의 마음을 뒤흔든 감정의 폭풍을 이해할 수 있겠더라. 그래서 로렌조가 약간은 철없게 자신의 첫사랑의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행동을 이해하게 되더라. 16(우리나라 나이로는 18살쯤?) 소년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아버린 그 감정을 말이다. 아이다. 이 여인에게 어찌 빠져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지.


 

그런데 부잣집 도련님 로렌조는 첫사랑으로 충만한 반짝이는 눈과 수줍은 미소 속에서 가난한 여인이었을 아이다가 겪었을 법한 삶의 편린을 알아보았을까? 3류 밴드의 별 볼일 없는 가수였을 아이다가 조금이나마 나은 삶을 위해 로렌조의 형을 따라 나섰다가 가방과 함께 버림받았을 때, 기어코 그의 집을 찾아내 초인종을 누를 때, 그리고 로렌조에게 다리미를 팔려고 할 때, 이탈리아 하층민 여인의 강한 생명력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소피아 로렌이 보여주었던 그런 강인함처럼 보인다. 소피아 로렌이 선이 굵어 좀 더 힘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끌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여린듯 갸날픔 속에서도 본능적으로 삶에 대한 애착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세상물정 모르는 로렌조의 눈에는 때로는 방탕으로, 때로는 연민으로, 때로는 속물성으로, 때로는 배신감으로 느껴진다.




 

한참 혈기왕성한 10대 소년의 철부지 사랑으로 치부하던 아이다는 절망하는 자신의 옆에서 끝까지 남아 있던 로렌조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세상은 로렌조의 사랑을 허락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고, 아이다는 그걸 알고 있고, 로렌조도 그걸 깨닫는다. 부잣집 도련님 로렌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어느 정도의 돈을 아이다에게 건넨다. 그 돈은 순수한 로렌조의 마음을 보여준다. 그는 그녀가 그 돈으로 삶을 좀 바꿔보길 원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로렌조는 성숙이라는 열매를 얻었다. 별볼 일없는 남자들만 만나며 인생을 채워왔을 아이다는 모처럼 찾아온 멋진 남자가 10대 소년이라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생각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긋난 채 찾아온 사랑이 아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로렌조처럼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가 아니다. 돈을 바라보며 로렌조의 진심을 알았을 테지만, 그녀는 다시 그녀의 세계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자신의 인생이 있는 곳으로 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애써 찾아온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절절하게 느끼는 아이다의 씁쓸한 얼굴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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