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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가수 Plan B에 대한 팬질 덕분에 그가 2009년에 출연한 영화 다니엘 바버 감독의 <해리 브라운 Harry Brown>을 봤다. 영화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지만 플랜 비는 정말 나쁜놈으로 나오더군. 몇 장면 나오지도 않으면서 기억에 또렷이 남는 건 팬질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맡은 노엘이라는 인간이 아주 나쁜 놈이었기 때문일 것이고, 예상외로 플랜 비가 그런 악역을 무리 없이 소화해 냈기 때문일지도... 그러다보니 그가 총맞고 목에서 피를 뿜으며 죽을때는 팬이고 뭐고 잘 죽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 하긴 그가 자신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주었던 발군의 연기실력을 본다면 예상외라고 말하는게 좀 실례가 될까? 하지만 배우와 역할의 씽크율도 정말 좋다. 내가 생각해보던 것이 있는데, 플랜 비 이친구가 진짜 조폭처럼 생겼다는 것인데^^ 한 때 어깨에 힘주고 껌 좀 씹던 형님 포스를 아주 확실히 풍기는 그의 외모의 덕 도 좀 봤을 것 같고 말이다.
해리 브라운은 영국영화지만 마치 미국영화처럼 보이는 영화이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영국의 슬럼가는 대부분 흑인과 히스패닉이 점령하고 있는 걸로 그려지는 미국의 슬럼가와 유사하게 보여지는 부분이 공간적으로 미국영화처럼 보이게 했다면, 마이클 케인이 맡고 있는 해리 브라운이라는 노인이 총 한자루로 동네의 양아치들을 싹 쓸어버리는 히어로적 캐릭터로 돌변하는 영웅주의(?)도 미국영화적이라는 느낌에 양념을 친다. 어쩌면 피쉬 탱크의 여주인공이 사는 공간과 동일한 장소일텐데 훨씬 위험한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두편의 영화는 똑같이 희망을 꿈꾸지 못하는 청소년과 청춘들을 보여주지만 그들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는 남자감독과 여자감독의 차이가 아니라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감독의 세계관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떻게든 캐릭터에게 꿈을 실어주는 것과 아예 제거해 버리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차이와 결과를 미래에 도출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또한 <해리 브라운>에서는 에밀리 모티머가 열연한 프램프톤이라는 여형사가 등장하고 있는데, 사실 그녀의 역할은 형사라기 보다는 사건을 취재해 글을 쓰고 싶어하는 작가처럼 보인다. 이는 그녀가 주인공 해리 브라운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사건을 해결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공권력의 무능함에 대해 관객들이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장면에서 경찰들이 자화자찬식의 회동을 가질때 그녀가 보여주는 미묘한 딜레마에 마음이 동하게 되는 것은 한편으로 그 딜레마에 관객인 우리도 은연중에 동의하게 되기 때문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해리 브라운이 사건의 발생장소이자 해결장소인 도로 밑 터널을 바라보며 짓는 엹은 미소가 약간은 불편하게 다가오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심각한 폭력이 전제되지 않은 해결은 없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 점점 험악해져 가는 사회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 공권력 때문인지에 대해서도 헷갈리는 이 딜레마가 우리의 딜레마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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