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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리 감독의 <세상의 모든 계절(Another Year)>은 정말 완벽한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TV드라마를 보는 듯 모든 장면 장면이 욕심이 없어 보였다. 편했다는 말이다. 배우들의 잔잔한 연기가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내가 보았던 마이크 리의 영화들은 일상의 잔잔함을 응시하면서 또한 감정이 폭발하는 지점을 만들면서 강약을 조절하는 영화였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계절>에 이르러서는 그 감정의 폭발이라는 영화적 장치를 배제하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감독의 연출력은 정말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TV드라마를 보는 듯 하다고 얘기했듯 <세상의 모든 계절>에는 정말 대화만 있다. 그것도 보통 수준이 높다고 하는 철학적이거나 어려운 이론을 동원하거나 그런 것도 없다. 그저 일상적인 대화만 있다. ,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한 후 톰(짐 브로드밴트), 제리(루쓰 쉰), 메리(레슬리 맨빌)등의 출연자들은 그들의 일상을 이루고 있는 직장에 가거나 밥을 먹거나 만나서 수다를 떠는 사소한 일들을 반복적으로 한다.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실수도 하지만 결국 인생은 작은 사랑을 잘 가꾸면서 흘러간다는 소박한 (어쩌면 절대 소박하지 않을)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마이크 리 감독은 주 내러티브를 톰과 제리 부부의 삶의 방식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꾸미고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삶은 어쩌면 감독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그려보는 삶의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 주변의 친구들이나 형제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모든 사람들이 톰과 제리 부부처럼 살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한 차분한 성찰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친구인 메리가 네거티브적인 인물로서 또 한명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외로움에 지쳐있고, 사랑에 실패했으며, 현재의 삶은 팍팍하다. 하지만 그녀의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 성찰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며 좋은 친구들마저 잃을 위기에 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은 다른 여타 배역들에게도 공통적이다. 톰의 친구인 켄, 톰의 형인 로니, 톰의 조카 역시 마찬가지다. 마이크 리 감독은 그들의 삶에 여유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측은지심이 없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상대에 대한 사랑과 용서와 아량이 없었다는 것이 톰과 제리 부부와는 다르게 외로움에 진저리를 치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들에게 측은지심이 있었다면 설사 혼자라도 외롭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인생이란 것이 둘로만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친구는 무작정 떠나지는 않는다. 톰과 제리 부부에게는 나를 사랑해 달라는 강요가 없다. 그들은 그저 사랑을 줄 뿐이다. 톰과 제리 부부는 외로우니 곁에 있어 달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먼저 옆에 가 있을 뿐이다. 그런 것이 아마 그들의 아들 또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전세대가 후세대에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돈이 아니라 측은지심을 몸소 실천하며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의 모든 계절>은 그런 영화다. 영화적 욕망으로 꿈틀대는 아드레날린을 분출하며 치기어린 현학의 과시 대신 그저 잔잔한 호숫가에서 차 한잔 마시며 담소를 나누면서 마음에 충만을 채우는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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