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베니스 영화제를 시작으로 연말, 연초 각종 미국의 시상식을 휩쓸 조짐을 보였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는 이번 2019 골든 글로브에서 감독상과 외국어영화상을 받으며 그 출발을 알리고 있다. 아마 지금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빗자루를 들고 흩어져 있는 각종 영화상 트로피를 쓸어 담으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물론 최종 목표는 아카데미 트로피일 것이고 말이다. 그럴 자격이 있는가요? 하고 묻는다면 그럴 자격이 있다고 말해야 할 정도로 영화 <로마>는 조용하고 시적이지만 강렬한 한방을 준다.

 

멕시코 중산층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고 있는 클레오는 거의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일하고 있는 집의 가장이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버린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어머니는 이 사실을 아이들에게 숨기고 싶다. 그즈음 클레오는 남자친구 페르민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지만 페르민은 나 몰라라하고 도망가 버린다. 결국 아이들은 아버지의 부재를 알게 되고, 클레오는 아이를 사산하며 다 같이 실의에 빠지지만, 남아있는 아이들과 엄마와 클레오는 서로 연대하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내용만 놓고 보자면 어떤 이에게는 그저 느린 보통의 TV드라마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이 영화에는 극적인 사건은 없다.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익숙한 스토리와 이미지라고 할 만하다. 이 스토리를 60년대와 7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의 식모 스토리로 바꿔도 그대로 적용이 될 정도로 친숙하고, 멕시코의 민주화 운동을 위한 시위장면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관객에게 이 영화는 어쩌면 크게 새로울 것 없는 스토리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각종 영화지에서 베스트 순위를 다투고 있는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우리나라의 관객들에게 더 많은 걸 말하고 있다는 생각도 했지만, 어쨌거나 서구의 영화제에서, 서구의 관객들에게는 <로마>가 좀 더 친숙하게 이것저것 생각해 볼 만 한 것을 제공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렇다면 평범한 이야기가 꽤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뭘까? 아마 그 대답이 바로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각종 영화제에서 대상과 감독상을 휩쓸고 있는 이유가 될 것 같다. 쿠아론의 연출은 정말 섬세하다. 사운드부터 소품 하나하나까지. 평범한 이야기 안에 숨어있는 각종 디테일한 묘사도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정말 강아지가 싸 놓은 똥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할 정도다. 사실 그 똥을 누가 밟게 되는가를 보라.

 

영화 <로마>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한없이 약해 보이지만 결국 강한 것은 여자라고 말이다. 쿠아론 감독은 집의 내부와 외부를 활용해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남자들의 세계는 무책임과 폭력의 세계라는 것이다. 집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페르민의 무책임, 멕시코 민주화 시위를 폭력과 죽음으로 억압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남자들이 만든 세상은 폭력과 피다. 이것은 여자들이 만드는 연대를 통한 사랑과 평화와 대비된다. 결국 쿠아론 감독은 집안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모두 지우며 영화를 마무리한다. 그것은 상징적으로 현재 멕시코의 폭력과 비겁함을 배제하고 싶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심정이지 않을까 싶었다. 섬세하게 직조된 장인의 영화라 할 만했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