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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는 사람이 산산조각나는 충격적인 오프닝과 그로 인한 긴장감을 제외하면 별로 건질것이 없는 영화인 것 같다. 그리고 그 긴장감이라는 것도 영화가 진행될 수록 풀어지면서 영화가 끝날 때쯤엔 모든 상황이 예측한 대로 흘렀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큐브는 우리나라에서 과대평가받은 대표적인 작품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시 비디오를 보지 못했기에 옛 기억에 의지해야 하고 더군다나 작품이 인상적이지 않아 이젠 희미해져버린 기억을 붙잡아 글을 쓰게 되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해야겠다. 

큐브가 저예산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저예산으로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으로 두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먼저 큐브처럼 소수의 등장인물들이 고립된 혹은 한정된 장소에서 사건을 벌여나가는 이야기 방식과 래리 클락 감독의 키즈처럼 다수의 등장인물이 대사로서 모든 상황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의도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는 폐쇄된 공간속에서 인간들의 의식과 무의식에 숨겨진 본성의 드러내기와 그로 인한 인간에 대한 환멸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전개과정에서의 진부함은 모든 장점을 흡수해버린다. 


다섯명의 등장인물은 이유도 모른 채 큐브안에 갇혀 버린다. 그리고 그들의 최대의 목표는 큐브에서 탈출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다른 분들은 카프카의 변신이나 어떤 철학적 해석을 인용하고 있지만 난 다른 의미로 해석이 된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를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나이를 먹으며 살아가는 건 일종의 투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큐브는 세상의 단면이고 주인공들은 갖가지 모습의 인간을 형상화한 것 같다.그리고 우리가 세상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수 없는 상태에서 살고 있듯이 큐브의 주인공들도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수 없는 큐브안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살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협동이라는 것을 통해 위험을 극복해 내듯이 큐브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로 협동을 통해 난관을 극복해 간다. 
그리고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동전의 양면같은 무의식 속의 악마성으로 인해 인간은 파멸한다. 그래도 세상은 여전히 돌듯이 큐브도 여전히 돌아간다. 

이렇게 해석해 놓고 보면 내용은 참 마음에 들지만 빈센조 나탈리 감독은 등장인물들의 전형성과 진부함을 극복해 내지 못한다. 여섯명의 등장인물은 딱 맞춘것처럼 적재적소에 갑자기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고, 인간의 악과 선한면을 대표하는 듯한 쿠엔틴과 자페아의 모습도 전형성의 혐의를 벗어나지는 못할것 같다. 등장인물들은 마치 내용전개에 필요하니까 끌려와있는 것 같다. 너무 쉽게 이야기를 풀어가려고 하는 감독의 의도가 좀 거북스러울 정도다. 그래서인지 등장인물들은 많은 갈등속에 놓이지만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고 마치 실에 매달린 인형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이런 상황설정은 큐브가 어떤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보다 저예산의 형태에서 헐리우드영화같은 재미라는 것을 추구하는 영화라고 볼때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보다는 긴장감을 풀어버리게 만든다. 그리고 예측가능한 내용전개에다가... 더군다나 흑인형사 쿠엔틴의 성격변화는 너무 갑작스러워서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실패는 반전이 없다는 것이다. 복잡한 수학공식은 내용전개외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후반부까지 별 역할이 없다가 한마디 내뱉으며 사건해결의 실마리를 던지는 자폐아도 캐릭터의 전형성으로 인해 반전으로 이끌어가지 못하고 저 아이의 순서로군 이라는 생각밖에 나지 않게 만든다. 

빈센조 나탈리 감독은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있는것 같다. 그는 세상이 온통 호화찬란한 빛이 쏟아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곳에 가장 순수한 형상인 자폐아를 내보낸다. 그는 세상을 바꿀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큐브는 저예산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역시 영화는 형식만 가지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영화이기도 하다. 장인의 혼이 깃든 도자기가 빛이 나듯 감독의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새로운 방식으로 작품속에 녹아있는가 하는 것이 영화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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