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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이화는 본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자세하게 묘사된 편지를 매번 받지만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한다. 결국 그 남자는 앞집에 살고 있는 요섭으로 밝혀진다. 연약해 보이는 요섭과 데이트를 하는 이화는 그의 성적인 욕망을 거칠게 거절한다. 요섭의 자살은 이화에게 충격을 남긴다. 대학 2학년이 되어 이화는 대학신문기자 우석기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석기의 욕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석기는 군대에서 사고로 죽고 만다. 대학4학년이 된 이화는 고교은사인 허민을 만난다. 이제 그녀는 허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육체를 던진다. 그러면서 모든 구속을 거절한다.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74<별들의 고향>이 세웠던 흥행기록을 단숨에 갈아치우며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영화가 된다. 이 기록은 무려 13여년이 지나서 <장군의 아들>로 깨지지만 인구대비로 환산하면 그야말로 대기록인 셈이다.


이화의 첫째 남자 민요섭, 두번째 남자 우석기

 

70년대의 관객들에게 이화의 성적 개방성은 많은 화제를 낳았던 모양이다. 장미희가 연기한 이화라는 여대생의 성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는 보수적이었던 당시의 분위기에서라면 상당히 도전적으로 느껴지며 세련되었다고 보여 질 만 했을 것 같다. 게다가 젊은이들이 즐겨 들었던 스타일의 대중가요를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낡았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던 것이 주요한 흥행요인이 아니었을까?


 이화의 세번째 남자 고교은사 허민


 지금에서 보면 이화는 스테레오 타입화된 성녀와 창녀라는 이분법적 편견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캐릭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이분법은 20대 초반 장미희의 해맑은 모습을 통해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이타주의적 모습이 부각되면서 창녀의 이미지는 희석시키는 쪽으로 진행된다. 그렇게 이화는 원할 때 육체를 제공할 수 있고 남자의 위치를 위협하지 않는 남자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여상상이 되어간다. 그리고 김호선 감독은 그런 모습을 마치 수녀처럼 보이도록 묘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이화를 보라. 여고생 이화에서부터 여대생 이화까지 이화라는 인물은 자기라는 존재를 지워나간다. 솔직히 이화에게 그녀를 위한 삶은 없는 셈이다.


이화는 이제 행복한건가? 영상자료원 vod에서 캡처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는 스타일적으로는 당시의 여타 한국영화보다 세련되어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지나치게 보수적인 결말을 향해 간 것은 아닌가 싶은 아쉬움이 있다. 비슷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이전의 흥행작 <별들의 고향>이 경아의 삶을 통해 도시의 비정함이라는 테마를 자연스레 드러내며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봤다면, 김호선 감독은 오로지 성의 자유라는 겉치레만 쫓을 뿐, 그 육체가 당대를 어떻게 담을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없어 보인다.


개봉 : 1977년 9월 27일 단성사

감독 : 김호선

출연 : 장미희, 신성일, 김추련, 신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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