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도시의 전경. 쓸쓸한 음악이 흐르는 추운 겨울. 유골함을 든 문호가 과거를 회상한다. 매독에 걸린 문호는 치료가 끝나자마자 술집으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경아를 만난다. 둘은 동거를 시작한다. 경아는 과거가 있는 여자다. 사회초년병 시절 회사 남자동료와 첫사랑에 빠지지만 배신당한다. 이후 돈 많은 중년남자와 결혼하지만 죽은 옛 부인의 대체품이었다는 알게 되고, 낙태경험으로 인해 헤어진다. 세 번째 남자 동혁은 경아를 소유물로 생각하며 호스티스로 전락시킨다. 문호에게 다정함을 느끼지만 동혁은 집요하게 경아를 쫒아 다닌다. 결국 문호와 헤어지고 경아는 자포자기하며 살고 있다. 경아가 알콜중독에 빠지고 통제가 불가능해지자 동혁은 문호에게 경아의 소식을 알리고 떠난다. 다시 하룻밤을 보내는 문호와 경아. 하지만 문호는 떠나고, 경아는 강가에서 자살한다. 문호는 경아의 뼛가루를 강물에 흘러 보낸다.



 

이장호 감독의 데뷔작 <별들의 고향>1974년 국도극장에서 개봉되어 그때까지의 한국영화 관객동원 신기록을 세운다. 당시의 관객들은 이 영화에 어떤 매력을 느꼈을까? 후대의 관객인 내가 봐도 <별들의 고향>은 매력적이다. 분명 익숙한 이야기 구조에 신파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도, 옛날 영화라 낡았다는 느낌이 아니다. 오히려 세련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아마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음악에 굉장히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당시 신세대 뮤지션이었던 이장희의 음악은 이 영화를 낡은 신파가 아니라 젊은이의 영화로 만든다. 그리고 별 것 없는 내용을 촌스럽지 않게 보여주는 이장호 감독의 연출이, 사실 조금 어지럽긴 하지만, 젊은 관객의 감성까지 잡은 건 아닌가 싶다. 결국 이 영화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빈말이 아님을 증명하는 영화가 되었다. 이후 이장호 감독은 80년대까지 한국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감독이 되었기 때문이다.


최인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별들의 고향>은 도시의 삶에 대해 말하고 싶은 영화다. 첫 장면이 서울의 전경이고, 다음장면은 문호가 경아의 유골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경아라는 여자가 서울살이에 실패하는 영화다. 경아는 고아가 아닌 것 같지만 고아처럼 그려진다. 문호 역시 결혼한 것 같진 않고 고향에서 돈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경아와 문호는 도시의 아웃사이더다. 그래서 그들은 쉽게 가까워 질 수 있었을 것. 반면 경아의 첫사랑인 영석은 도시 이미지를 대표한다. 영악하고 배신을 하며 사랑의 순수성을 짓밟는다.



 

이장호 감독이 경아의 불행한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것은 뭘까? 여자의 삶을 이토록 망치는 남자들의 모습을 나무라는 것일까? 그보다 앞서 이장호 감독이나 최인호 원작자가 경아의 불행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비정함이었던 것 같다. 점차 자리를 잡아가던 70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악하게 살아남아야 하는 현대인이라는 존재를 만든 그 시대의 비정함.

 

이렇게 이장호 감독은 스타일과 메시지로 신파의 틀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어떻게 보면 과감해 보이는 편집을 동원하고. 당시 트렌드였던 청바지 세대라는 청년문화의 음악을 창의적으로 활용한다. <별들의 고향>은 젊은 이장호 감독의 치기를 느낄 수 있어 더 마음에 든다. 당대의 흐름과 타협하지 않는 그 치기. 그래서 영화 <별들의 고향>은 아직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개봉 : 1974년 4월 26일 국도극장

감독 : 이장호

출연 : 안인숙, 신성일, 윤일봉, 하용수, 백일섭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