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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수 감독의 <야시>는 그냥 한마디로 실망스런 작품이다. 2대 트로이카로 불릴 정도로 인기 있었던 장미희 주연에 당시 활발하게 활동했던 윤일봉, 김추련이 나오고 더군다나 신인시절의 안성기까지 출연하지만 부실한 시나리오를 감추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 개봉관에서 당시에 1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니... 관객들이 순진했던 건지, 장미희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기 때문인지 그야말로 아리송...

 

무엇보다 주인공의 방황에 그다지 공감이 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감독은 무엇보다 승아의 방황에 관객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했는데, 디테일이 너무 부족했다. 나이트클럽에서 친구들과 몰려 다니며 남자들 주머니를 털거나, 대입에 실패한 후 방황하다 진태에게 순결을 잃은 것만으로 그녀의 고통에 이입하기는 힘들다. 더군다나 부모마저 꽤 인텔리에 점잖은 편이다. 그녀에게 고통을 줄 만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방황은 대입에 실패한 것에 있다는 건데, 잠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는 장면이 있던가 그 정도이다 보니, 그녀의 방황이 그냥 공중에 붕 떠버린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을 느꼈던 석호를 만나는 장면과 그의 죽음을 일사천리로 연결하는 몽타주(?)에서도 너무 서둘러 석호와의 관계를 정리한다는 느낌이 강하고, 언제 어디서나 나타나는 진태에게 다시 한번 강간당하는 장면은 도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정신과 의사인 중년 남자 윤일봉과의 만남 역시 쉽게 공감하기 힘든 장면들이다. 도대체 한국 영화의 중년 남성들은 그다지도 친절하고, 한국영화의 20대 초반의 여자들은 그다지도 중년남자의 품을 좋아하는지. 어쨌거나 윤일봉이 승아를 대상으로 논문을 쓰고 있다는 것에서 만남의 필연성이 좀 느껴지려나.

 

어쨌거나 다시 승아의 방황은 시작된다. 그리고 시골로의 여행. 또 갑자기 어떻게든지 나타난 진태와의 하룻밤. 진태는 거칠게 강간하던 모습과는 정반대로 대단한 로맨티스트로 변신하여 승아를 감동시킨다. 승아는 진태와의 하룻밤을 지내고 눈쌓인- 이것도 영화적으로는 문제다. 멀쩡하던 백사장이 갑자기 눈이 그토록 쌓이는 것도 밤새 눈이 왔다고 하면 물론 가능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눈 내리는 장면 한 쇼트 정도는 인서트로라도 넣어야 하지 않나?..... 어쨌거나 결국 승아는 눈쌓인 백사장을 걸어 바닷가로 간다. 자살인가? 혹은 새로운 시작인가? 그녀는 왜 자신을 찾지 못하나? 방황의 이유를 모르니 결말도 애매모호해 진다. 어쩌면 자살의 암시야말로 가장 손쉬운 결론일 듯. 도대체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는 영화처럼 보일 뿐이다.


개봉 : 1979년 2월 23일 단성사

감독 : 박남수

출연 : 장미희, 윤일봉, 김추련,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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