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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여배우 글로리아 그래이엄은 누와르 영화에서 낯이 익다. 특히 프리츠 랑 감독의 <빅 히트>에서 그녀만의 개성이 잘 드러난 연기로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런 그녀가 전성기가 지난 후 50대에 이르러 죽기 직전까지 마지막 사랑을 했다는 것을 <필름스타 인 리버풀>을 보면서 알게 된다. 여배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그녀의 에너지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글로리아는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 네 명의 남편에게서 각각 네 명의 아이를 두었다는 것도 그녀답지만, 아들과 나이차가 거의 없는 남자와 거리낌없이 사랑을 나누는 그 대담함도 아마 거칠 것 없었던 자신의 젊은날 인생으로부터 비롯된 자신감일 것 같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마 이런 대담한 도전은 힘이 들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연극 공연을 준비하는 늙은 여배우는 갑자기 쓰러진다. 그녀는 바로 할리우드 흑백영화 시대에 활동했던 여배우 글로리아 그래이엄이다. 이제 필름은 과거로 돌아간다. 1978년 영국 리버풀. 공연차 들른 영국에서 단역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피터를 만난다. 그녀에게 피터는 아들뻘이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두 사람은 곧 불꽃같은 사랑에 빠진다.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이 있었지만, 모든 갈등을 극복해간다. 1981년 글로리아는 지병인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피터와 함께한다.
007을 제작자가 20여년 전부터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기다려왔다고 한다. 바로 여배우 아네트 베닝이 글로리아만큼 나이가 들길 기다렸다고 하니 참 대단하다. 그 결과 아네트 베닝은 글로리아를 완벽하게 연기한다. 특히 글로리아가 말할 때 보여주는 특유의 입모양을 잘 살려낸 것 같다. 하지만 더 관심이 가는 배우는 바로 <빌리 엘리어트>의 꼬마였던 제이미 벨이다. 어느덧 아저씨의 모습으로 늙은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리고 또 댄스실력도 녹슬지 않았다. 영화에서 아네트 베닝과 디스코를 추는 장면 정말 흥겹다. 춤추는 장면을 보는 것은 늘 재미있지 않은가 말이지.
아네트 베닝과 제이미 벨이 디스코를 추는 장면
영화는 글로리아 그래이엄이나 50년대 누아르 시절의 배경에 관심이 없는 관객이라면 조금은 심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폴 맥기건 감독은 멜로드라마에서 흔히 기대하곤 하는 연인들 사이의 격정적인 감정의 폭발이나 러브씬을 자제하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면이 많이 담백한 편이다. 그 단조로움을 시간을 건너뛰는 점프컷으로 연결하는데 자칫 장면 연결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늙었든 젊었든 사랑하고 있는 순간은 언제나 천국이지 않겠는가? 글로리아는 자신의 삶을 올곳이 자신의 욕망대로 충실히 살아가는 행운을 타고 난 삶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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