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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랙베이 : 바닷가 마을의 비밀>은 코미디영화라고 쓰고 호러 영화라고도 생각해볼까 싶다. 분명 코미디인데 끔찍하기도 라는 느낌이 끈끈하게 눈에 어른거리는 묘한 영화다. 그러니까 영화가 끝나고도 한바탕 웃음으로라는 유쾌함을 느끼기가 힘든 코미디영화다. 브루노 뒤몽 감독은 대놓고 불편한 영화를 만들기로 한 것 같다.
풍경 좋은 해안 마을. 귀족들의 휴양지이기도 하다. 홍합을 따고 있는 가족은 이 풍경이 고통이지만, 휴가 온 귀족들에게는 한 폭의 그림이다. 하지만 이 해안에서는 연쇄실종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무능력한 경찰은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고 있다. 어부의 아들 마루트와 귀족집안의 빌리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알고 보니 어부 집안은 식인종이었고, 귀족 집안은 근친상간으로 얼룩져있다. 과연 경찰은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영화의 초반에서 우리가 느끼는 건 계급 혹은 신분 갈등이다. 20세기 초가 배경이니까 이 경계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중일 테지만 21세기인 지금까지도 계급은 모습만 달리한 채 여전히 흙수저 금수저 식으로 존속하고 있다. 조금만 우리 주위를 둘러봐도 돈에 의한 신분은 교묘하게 지속되고 있는 걸 보라. 브루노 뒤몽 감독 역시 이 지점을 포착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신분 혹은 계급이 21세기에도 전혀 화해할 기미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영화는 일종의 조롱이다. 높은 계급의 귀족은 근친상간으로 이뤄지며 모두 제정신이 아닌 상태다. 경찰은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지독할 만큼 드러낸다. 그렇다고 하층 계급에 애정을 쏟지도 않는다. 남녀의 사랑은 어떤가? 어부의 아들 마루트는 나의 여자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남자 이름을 가진 빌리는 여자이나 남장을 즐긴다. 그랬거나 어쨌거나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졌다면 신데렐라 스토리가 되었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하층 계급인 마루트가 얼토당토 않은 핑계를 대며 빌리를 거절한다.
브루노 뒤몽 감독은 어쩌면 하층 계급이 귀족 계급에게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들은 귀족을 당연하다는 듯이 잡아먹고, 할 말 다하며 당당하다. 카니발리즘에 대한 단죄는 이 영화에서 전혀 없다. 반면 귀족과 경찰은 허위와 허상에 찌들어 내면이 너무 가볍다. 그래서 그들은 풍선처럼 속이 텅 비어 하늘을 날아오를 수도 있다. 하늘을 나는 것은 신의 기적이 아니라 브루노 뒤몽 감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조롱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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