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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빌리 진 킹이라는 여성 테니스 선수에게 방점이 찍혀있다.

두 가지를 말하기 위해 이 영화는 달린다.

 

먼저 그녀의 성정체성이다. 이 영화는 그것을 중요하게 다룬다. 그녀가 성정체성에 눈 떠 가는 과정은 그녀가 테니스업계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애쓰는 것만큼이나 중요해 보인다. 이 영화에서 여성이라는 위치는 그야말로 약자다. 10배나 차이 나는 개런티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기를 강요받는다. 페미니스트로서의 그녀의 투쟁은 약자에 대한 항거이기도 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 21세기에서는 페미니즘으로 20세기의 여성의 투쟁이 성과를 거두었다면 21세기에는 소수자에 대한 투쟁이 본격화 되어야 한다는 뜻처럼 보이기도 한다.

 

테니스의 성대결은 한 도박중독 남성우월자 테니스 선수 바비에 의해 기획된다. 그것은 처음부터 도박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그 도박에서 여성이 승리했다. 물론 첫 번째 경기 이후 바비가 약물에 의지하고 훈련을 게을리 했다는 것을 꽤 자세히 보여준다. 여기서 남자가 훈련을 하지 않아서 여자에게 패배했다는 가정을 할 수도 있을 만큼 바비의 나태를 자세히 보여준다.


그러나 여기에 속으면 안된다. 이것은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와도 같기 때문이다. 결국 승자는 거북이다. 그리고 그 거북이의 승리에 우리는 지지를 하고 위안을 받는다. 왜냐하면 거북이는 약자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여성 혹은 빌리 진 킹은 거북이다. 우직하게 달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 우직함이야말로 여성의 지위를 한 단계 상승시킨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제 성소수자외에도 많은 소수자들은 달려야 한다. 우직하게 말이다. 역시 거북이처럼 쉬지 않아야 한다. 세상은 다시한번 출발선에 서있다. 거북이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토끼 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는 같이 거북이가 되어 달려야 하는 시대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무조건 흑백논리의 선악대결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자는 약. 남자는 강이 아니라 이 영화는 양성평등을 자연스럽게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 펼쳐지고 있는 한국식 페미니즘에는 이런 유연한 시선이 좀 필요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빌리 진 킹과 바비외에도 관심이 가는 인물도 있다. 빌리 진 킹의 남편은 아내의 성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그녀가 아내를 두고 다른 남자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와 경쟁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우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는 진지하게 그들을 다룬다. 바비 릭스의 아들 역할도 그랬다. 그는 아버지의 훈련 파트너이기도 하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몰락을 지켜보는 인물이기도 하다. 아마 그는 남성우월주의자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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