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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를 배우로서든, 핀업 스타로서든, 한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그녀는 나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배우는 아니었다. 훌륭한 감독의 훌륭한 작품에 자주 출연했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녀는 존재감이 없었다.


그런데 오토 플레밍거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강>을 보면서 조금 변했다.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나긋한 목소리로 섹시한 자태를 뽐내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그녀의 스타 이미지를 고스란히 가져온 장면은 세월을 견디면서 진부한 클리쉐가 되어버린 탓으로 섹시함은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짙은 화장덕분에 그녀가 마네킹처럼 보였다. 이런 마네킹이미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따라다녔다. 그녀는 정말 짙은 화장으로 얼굴을 가리고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치마 대신 몸에 딱 달라붙는 청바지와 블라우스로 갈아 입고 등장할 때, 먼로는 섹스 심벌로 변해있었다. 그녀는 클리쉐가 아니라 연기자가 되어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때부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는 걸 얘기해야 할 것 같다. 마릴린 먼로의 이런 변신은 영화에도 직접적인 화학작용을 만들어 내는데, 로버트 미첨과 뗏목을 타고 강을 따라 여행하는, 어떻게 보면 밋밋할 수도 있는 이 영화가 서부극의 외피를 쓴 멜로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마릴린 먼로의 덕을 톡톡히 본 것 같다.

 


물론 감독으로서의 오토 플레밍거의 연출력도 빠트릴 수는 없다. 이 영화는 내용 때문에라도 넓게 펼쳐진 시네마스코프 화면이 무척 생동감 있어 보였다. 영화는 총과 말을 찾으러 가는 여정이지만, 매트(로버트 미첨)와 케이(마릴린 먼로)의 사랑이 발전해 가는 영화이기도 하다. 오토 플레밍거 감독은 멜로 파트를 서브 플롯으로 설정하긴 했지만


영화에서 시종일관 강조되는 것은 매트와 케이의 화학작용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끌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또한 케이의 남자친구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존심 강한 남자 매트는 간통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다. 더군다나 아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사회의 법을 수호하는 남자라는 좋은 의미의 가부장으로서의 모습도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는 이미 과거의 사건으로 권위에 흠집을 냈던 적이 있다.


 



오토 플레밍거 감독은 배경을 이용할 줄 안다. 강이 잔잔하게 흐르거나 폭풍처럼 흐르거나 하는 리듬은 모두 매트와 케이의 감정선과 닿아있다. 특히 여행중에 캠핑을 하게 될 경우 강은 두 사람의 후경에서 흐르게 한다. 대사가 서로의 관심을 거부하고 있다 하더라도, 배경으로서의 강물은 이상하리만치 세차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면 그 강물이 두 사람의 소용돌이 치는 감정의 욕망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영화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매트와 케이가 당연하게도 맺어질 것이라는 것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무책임하게 여자를 버려두는 남자답지 못한 남자는 죽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방해물의 제거를 어린 아들이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매트의 약점이라 할 과거의 행위를 아들이 그대로 반복한다는 것을 통해 아들의 용서와 인정을 받은 진정한 가부장으로 거듭난 후에 사랑의 결실은 이루어진다. 케이는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하이힐을 저 멀리 던져버린다. 그녀에게 하이힐이 중요했던 것은 그것이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트의 품에 안기는 순간 자동적으로 먹고사는 문제는 그녀의 고민이 아니다. 그건 매트의 고민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보금자리는 여전히 인디언이 노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로만 구성된 불안정한 가족의 보금자리는 불타 버린 후이다. 이제 여기에 어머니가 추가됨으로써 완전하게 구성된 새로운 가족은 희망을 품에 안고 강이 아닌 길을 통해 귀환할 것이다. 또한 인디언들이 화살을 쏘아대며 그토록 부수려고 했던 것이 그들의 결합이라는 것도 잊지 말것. 사랑이 완성된 지점에서 강은 더 이상 필요없고 인디언은 그런 견고함에 화살을 쏘아대 봤자 헛수고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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