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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순이가 시집가는 날. 그러나 아직 남자를 모른다. 한 동네에서 오누이처럼 자란 바우는 순이의 결혼에 질투가 난다. 나이 많은 남편은 순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순이는 시댁에서 시어머니의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밤이 무섭다. 어느날 시어머니가 사다준 고무신과 동동구리무를 받고 며느리와 아내라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남편과 첫날밤을 보낸다. 집을 나온 바우는 순이와 떠나려하지만 순이가 완강히 거절한다. 바우의 청을 거절한 것에 괴로워하던 순이. 그만 불을 내 집이 타버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순이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사랑을 알고 가족의 정을 느낀다. 몇 달 후 순이는 아들을 출산한다.

 

홍파 감독의 <>은 안정감이 있는 영화다. 전체적으로 내러티브도 좋았고, 다양한 상징의 활용. 아름다운 촬영등 내러티브를 영상으로 잘 풀어낸 것 같다. 홍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책임감에 대한 것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섹스를 받아들이느냐가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얼마나 자각하고 있느냐의 문제로 본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는 결혼과 함께 변하게 될 자신의 위치를 자각해 나가는 과정을 통한 순이의 내면이다.


결국 한 사람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제도 혹은 관습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어른들의 기다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는 미덕이랄까? 고무신과 동동구리무로 마응믜 문을 열고 섹스를 하겠다는 결심이 어른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후반부에 형제같던 바우가 찾아와 자신을 강간하려고 했을 때 순이는 바우도 남자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내적갈등을 겪고 남자와 여자의 다름과 관계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다시 태어남은 기존의 낡은 것들은 모두 버리거나,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집이 불타는 것은 이제 순이가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며 알에서 껍질을 깨고 나오는 순간이며, 이전의 낡은 것은 모두 불타 사라져버리는 과정이 된다. 집이 새로 지어지듯, 순이는 어른으로서 새 출발이다. 아이도 태어난다. 바로 희망이다. 영화 <>은 모든 과정을 주구장창 대사로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미지의 병치로 표현하는 홍파 감독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가 그렇게 빨리 한국영화계에서 사라졌다는 것.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의 기량을 좀 더 오래 발휘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70년대 하이틴 스타 임예진의 성인연기 도전작이기도 하다.


개봉 : 1978년 5월 6일 대한/세기 극장

감독 : 홍파

출연 : 임예진, 이대근, 한은진, 박원숙, 김상순, 장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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