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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었다, 부산 대한극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큰 스크린을 가득 채운 시원한 파도를 보면서 잠시 넋을 잃었다. 극장 티켓을 끊은 시간대는 이미 영화가 시작된 후였기 때문에, 어둠에 눈이 익숙해 질 때까지 나를 집어 삼킬 듯 몰려오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었던 기억은 아주 강렬해서 지금도 생생하다. 이고르 오진스 감독의 오스트레일리아 영화 <위너스>의 첫 기억이다. 어린 마음에 영화도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추억의 영화가 되었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젊은 시절 철인경기에서 2위를 한 후, 평생 패배감에 살고 있는 아버지 조는 큰 아들 애덤을 챔피언으로 만들어 자신의 한을 풀려고 한다. 둘째인 스티브도 같이 훈련하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는 스티브를 형의 훈련 파트너로만 생각할 뿐, 노골적으로 형을 편애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스티브는 밴드의 매니저로 활동하며 아버지에게 인정받고자 하지만 아버지는 애덤의 훈련에 지장이 생기는 것만 걱정한다. 결국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스티브는 자신이 애덤을 이겨 아버지에게 복수하려 한다. 그러나 우승 문턱에서 스티브는 아버지를 위해 일부러 넘어지며 형에게 챔피언 자리를 양보한다.

 

 

처음 영화를 봤던 어린 시절에는 스티브가 일부러 지는 것이 너무 억울했다. 끝까지 아버지에게 어퍼컷을 날려주기를 바랬었다.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희생을 하는지 안타깝기까지 했다. 30년이 지나서 화질 나쁜 비디오로 다시 보니 스티브의 희생이 좀 더 커다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버지 조는 자신의 패배감에만 사로잡혀 아들에게 큰 상처를 주고 말았다. 아버지는 작은 것에 집착해 큰 그림을 보지 못했던 것.

 

하지만 스티브는 결국 큰 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다. 그는 마음속의 부채를 다 씻어냈기 때문이다. 록밴드의 매니저가 되든, 다른 뭐가 되든 말이다. 역시 다시 봐도 재미있고, 그 시절의 감동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더불어 음악도 여전히 좋았라. 그 시절에도 참 귀에 쏙 들어왔지만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사운드트랙 앨범도 발매되지 않았고, 라디오의 영화음악실에서도 틀어주지 않았다. 지금은 유투브에서 바로 찾아서 들어 볼 수 있다. 세월도 그만큼 흘렀고, 세상도 그만큼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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