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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비트를 보기 전에는 칸느영화제에서 각광받았다는 자비에 돌란이라는 89년생 감독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약관의 나이에 만들고 깐느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다는 데뷔작 <나는 엄마를 죽였다>부터 두 번째 작품 <하트비트>까지 20살짜리가 만들면 얼마나 잘 만들었겠나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

런.

데.

이번에 <하트비트>를 보면서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음악계에 약관의 실력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상기해 보면서 영화계에는 없으라는 법도 없지 하면서... 국내에도, 비교하기가 민망하긴 해도 최야성이라는 선배가 있지 않는가 말이지. 비록 영화의 완성도면에서는 죽만 쑤다 사라져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하.

지.

만.

자비에 돌란은 재능으로 똘똘 뭉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치기어린 도전은 아니었다는 거다. 그가 두 번째 영화인 <하트비트>에서 보여준 영상들은 20살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감각을 최대한으로 뽑아 낸 아름다운 그림들이었다. 그리고 돌란은 떡잎으로서의 자신의 가능성을 충분히 내비치며 영화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해가고 있다.

그.

렇.

다.

고.

이 영화가 걸작이라는 말은 아니다. 완성도가 너무 뛰어나 미칠 것 같사옵니다도 아니다. 그는 사랑의 열병을 앓는 20대 청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첨가하겠다거나, 내면을 깊이 있게 분석해보겠다거나, 아니면 그들을 둘러싼 사회를 에둘러 고발하겠다는 그런 욕심도 없다. 그저 지금 사랑 때문에 고민하고, 다투고, 상처받고, 울면서 한단계 성숙해가야 하는 서툰 젊은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그 대신 돌란 감독은 최대한 싱싱한 젊음을 어떻게 영상으로 표현하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최대한의 감성으로 뽑아내겠다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야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젊은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이 영화는 마리와 프란시스 그리고 니콜라의 삼각관계라는 주 내러티브외에 다큐멘터리 터치로 젊은이들이 자기의 사랑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수시로 삽입하고 있는 것은 영화를 경유한 어떤 판타지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라고 보여진다.

 

더불어 자비에 돌란 감독의 <하트비트>에서는 다양한 선배감독들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 삼각관계 내러티브가 모두 그런건 아니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프랑소와 트뤼포의 쥴과 짐이 많이 떠올랐다. 단지 한 남자 니콜라를 두고 마리라는 여자와 프란시스라는 남자가 경쟁한다는 것이 다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단지 사랑에 목숨 걸게 뭐가 있는가? 봄날은 간다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고 말하는 건 이제 구세대. 신세대는 사랑에 빠진 동안에는 지독하게 사랑하고 이별의 아픔을 겪고 다시 사랑에 빠지면 그만인 것이다. 더군다나 아직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라면 그 정도에 삶을 접는다는 건 미친짓인 것이다. <하트비트>의 마지막 장면은 둘도 없는 친구였던 마리와 프란시스가 니콜라 때문에 서먹해진 후, 화해를 하고 다시 친구가 되지만 다시한번 같은 남자를 두고 경쟁할거라는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이거야말로 정말 20살의 감독다운 결말 아닌가? 인간은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을것 같지만 오히려 그런 되풀이야말로 젊은이들의 모습이며, 성숙이라는 이름으로 성장한다는 건 그러한 되풀이 혹은 어리석음이 쌓여서 나도 모르게 내안에 들어와 있는 것일뿐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 슬로우모션을 활용하는 방식이나 음악의 사용에서는 왕가위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니콜라를 만나러 가는 마리와 프란시스의 설레임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보여지는 슬로우모션과 카메라 움직임은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적절하게 왕가위 스타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거기다 색채사용이나 배경의 활용등에서는 장 뤽 고다르도 많이 떠오르게 하는데, 이걸 단순한 모방이라고 봐야할지 아니면 적절한 스타일화라고 봐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톡톡 튀는 이 영화와 아주 잘 어울리는 리듬이었다. 특히 돌란 감독은 인물의 심리를 드러낼 때 얼굴보다는 다른 신체기관의 분절된 클로우즈업을 활용하고 있는데, 이게 또 매우 신선하게 다가온 부분이기도 했다. 그 외 의상이나 과감한 원색의 색채 사용에서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향이 보이기도 하는데, 어쨌든 선배 영화인들의 적절한 유산을 잘 활용하면서 언젠가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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