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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엽 감독의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어떻게 보면 70년대 후반 한국영화의 자양분을 귀신같이 흡수한 영화처럼 보였다. 걸작이라는 것이 아니라 약삭빠르다고 해야 할까? 70년대 후반기 호스테스 영화 붐에 제대로 올라탔다는 것. 70년대 시골에서 올라온 여자들의 굴곡진 인생역정을 가장 대중적인 문법이라고 할 여러 남자 거치기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는 점. 더군다나 일방적으로 그 피해를 남자들의 기득권이나 잘못된 사회의 시스템에서 찾는 노력을 포기함으로써 검열을 피해가고 있는 것 등. 이 영화는 당시의 가장 대중적인 화법을 보여주는 영화인 것 같았다.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흥행에서 크게 성공했다. 물론 그 일등공신은 이 영화의 주인공인 정윤희라고 해야 한다. 이 영화는 감독의 영화라기보다는 정윤희의 영화라고 보는 것이 맞다. <꽃순이를 아시나요>에서 정윤희는 그 어떤 영화에서보다 예뻤다. 아름답다는 말보다는 인형처럼 예쁘다는 말을 사용해야겠다. 그녀가 예쁜 외모로 남자들을 거치며 인생의 쓴 잔을 하나씩 비울 때마다 안타까움은 그 배로 증가하며 그녀의 고통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것은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는 아니다. 그저 정윤희는 꽃순이 그 자체였다. 오글거리는 대사와 제스처가 아무리 난무해도 그건 감독의 탓이지 정윤희의 탓은 아니다.


사진작가 하선생(하명중)을 통해 보여주는 남자를 거치며 타락(?)해 가는 여성이라는 스토리가 가져오는 클리쉐가 익숙한 것이라면, 당시의 청춘문화를 반영한 대학생 김성구와의 사랑과 배신의 스토리는 진부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화면에 젊은 활기를 불어넣는 효과를 낳는다. 늙은 할아버지와의 스토리는 또 어떤가? 나쁜 남자 속에 등장한 좋은 남자.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남성이 아닌 상태다.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는 시퀀스가 아닐 수 없다. 꽃순이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신의 미래를 남자에게만 의지하려 했기 때문일까? 항상 그렇듯 순수를 상징하는 남자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봉수라는 캐릭터다. 그는 꽃순이를 구원해줘야만 한다. 하지만 이번에 그 구원을 거절하는 것은 꽃순이 그녀 자신이다.


정인엽 감독은 꽃순이를 다시 거리로 돌려보낸다. ? 이 영화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바람부는 거리를 걷는 꽃순이의 뒷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결국 타락했다고 치부되어 버리는 여자에 대한 차가운 시선뿐이다. 안타깝게도 바람 부는 거리의 그 뒷모습은 사회고발로 이어지지 못하고 만다. 그러므로 그녀는 무존재가 되어 버린다. 먹다버린 능금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 정인엽 감독은 여자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육체만 착취하다 결국 버리고 만 셈이다. 가장 대중적인 소재를 취합하여 영화를 만들고, 그 많은 대중들이 호응한 영화가 인간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구원에 이토록 소극적이라는 것. 그 시절의 세상과 인심이 그토록 각박했던가 보다



봉 : 1979년 5월 25일 스카라 극장

감독 : 정인엽

출연 : 정윤희, 하명중, 김추련, 김길호, 박일우, 도금봉, 박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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