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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시골마을에서 16살 소년 찰리는 달리고 달린다. 그런데 이 조그만 마을에 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이 있었다. 바로 승마용 말 ‘린 온 피트’다. 그는 말의 주인인 델에게 고용되면서 ‘린 온 피트’를 돌보게 되고 정을 느낀다. 이즈음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죽고 고아가 된 것도 모자라 경기에서 계속 지던 ‘린 온 피트’마저 죽을 운명에 처한다. 찰리는 무조건 ‘린 온 피트’를 데리고 그리운 고모를 찾아가기로 한다. 그리고 순탄치 않은 여정이 시작되는데...
앤드류 헤이 감독이 누군가 찾아보니 바로 퀴어영화 <위크엔드>를 만들었던 감독이다. <위크엔드>에서도 뭔가 서정적인 분위기 만드는 연출이 좋았는데, <린온피트>에서도 어떤 서정적인 정서를 많이 느끼게 한다. 뭔가 허무하고 쓸쓸한 느낌은 주인공인 찰리의 내면이 외부로 표출되어 스케치된 모습이다. 찰리를 연기한 찰리 플러머의 훌륭한 연기가 한 몫 단단히 했음도 당연하다. 그는 이 연기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신인연기상에 해당하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상을 받았다.
승마용 말이 주인공이지만 말의 야생성 혹은 승마라는 스포츠를 통한 액션 혹은 활동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게다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린 온 피트’는 사고로 죽으면서 주인공 찰리와 감정적 유대감을 형성하리라는 기대도 저버리게 만든다. 처음부터 동물과 인간의 유대감이라는 전형적인 감동스토리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앤드류 헤이 감독은 찰리의 여정을 통해 그가 겪는 고난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다. 그런데 왜 찰리는 고난을 겪어야 할까? 아버지는 찰리를 사랑하지만 어른으로서의 성숙함은 보여주지 못한다. 더불어 ‘린 온 피트’는 동물이라는 한계는 있다 해도 찰리에게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 굳이 이 영화의 제목이 <린온피트>가 될 필요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감독이 제목을 그렇게 짓기로 결정했다면 뭔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찰리를 보살피는 존재로서 부족했던 아버지와 자신이 아버지의 역할이 되어 ‘린 온 피트’를 보살피려는 찰리는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하게 실패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즉 성숙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죽었지만 찰리는 성숙한 어른이 되는 여정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고모를 찾아가는 여정은 성숙한 어른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고모가 도서관 사서라는 것은 결국 지식이 지혜를 담게 되고 성숙한 인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는지... 영화의 처음과 끝에서 달리던 찰리는 어쩌면 좀 더 달리고 자라야 할 것이다. 달리기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다시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육체를 완성하고 어른이 되었을 때 또 다른 ‘린 온 피트’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고모처럼 품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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