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만희 감독의 1967년 작품 <귀로>는 정말 세련된 멜로드라마다. 이만희 감독은 거의 마이다스의 손이다. 건드리는 장르마다 이토록 세련되다니.

 

영화를 보는 내내 문정숙은 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분명 그녀에게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올케가 오빠와 이혼해 달라고 말하기까지 하지만, 그녀는 결국 자살을 택한다. 신문기자도, 남편도, 고모도, 가정부까지. 이만희의 영화에서 상투적인 인물은 하나도 없다.

 

남편은 6.25전쟁에서의 부상으로 성불구가 되었다. 그는 아내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써 신문에 연재하고 있다. 신문사의 부장은 소설속의 정숙한 아내의 모습은 현대의 모습이 아니라며 답답해한다. 문정숙 역시 답답한 인물일수 있다. 신문기자 강을 만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억압한다. 문제는 모두가 억압하지 말라고 하는데 본인 스스로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녀는 벗어나지 못하며 이만희 감독은 그녀를 벗어나게 두지 않았을까? 만약 벗어나게 두었다면 이 영화는 현대적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수도 있다. 영화 스타일은 무척 현대적이고 모더니티적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되었다. 어쩌면 문정숙이 벗어나지 못한 현실은 아무리 영화 속 인물들이 모던하다 해도 사회가 모던하지 못하기 때문에 벗어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남편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전쟁의 그림자. 군사문화의 잔재는 기어코 애견 배스를 죽이는 사태로 간다. , 애견 배스을 죽인 행위는 문정숙을 죽이고자 하는 욕망의 우회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에서 결혼한 이상 욕망을 숨기고 한 남자의 아내로서 일부종사할 것을 은근히 강요하는 사회가 문정숙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일지도 모른다. 문정숙은 사회라는, 남편이라는, 고모로 대표되는 시댁이라는 이중 삼중의 감옥에 갇혀있는 것이다. 결국 기자가 어디로 갈 것인지 모르지만 무조건 떠나자고 했을 때 부산, 제주라고 하더라도 그녀를 구속에서 놓아줄 곳은 한국 어디에도 없는 셈이되고, 문정숙은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만희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것일 테다.

 

남편은 어떤가? 그는 군가를 들으며 자신의 남성성을 군사적 문화에서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남성다움이 아니다. 이만희 감독은 한국전쟁을 통해 불구가 된 남성을 보여주며 그의 위선과 위악을 통해 고통받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한국이라는 사회를 바라본다. , 한국의 군사문화를 바탕으로 한 견고한 보수주의적 남성문화가 여성/문정숙을 자살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다시한번 이만희는 남자에게 신뢰를 주지 않는다.

 

기자는 어떨까? 그는 문정숙을 유혹하고 사랑하지만 그녀를 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갈 곳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멀리 도망가자고만 한다. 그는 몸을 던져 사회에 저항할 만큼 견고한 남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망만 가는 인생. 그것은 진정한 탈출이 아니다. 그래서 문정숙은 남편 아닌 다른 남자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 결국 그녀는 스스로 벗어나기로 작정한다. 그것은 남자들이 만든 질서로 가득한 세상을 버리는 것이다.


바람을 이용해 문정숙의 내면 심리 묘사등 미장센이 정말 훌륭하다. 이만희 감독은 인상 쓰며 거리를 걷는다거나 하는 재미없는 방식으로 심리를 묘사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정확한 카메라 위치와 앵글 그리고 소품. 자연을 이용할 줄 아는 그야말로 한국영화계 최고 능력자중의 한명이다.


개봉 : 1967년 7월 27일 명보극장

감독 : 이만희

출연 : 문정숙, 김진규, 김정철, 전계현, 이룡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