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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끝에 돈을 모은 진두. 고향에서 배를 살 계획이다.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여자 홍아와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하고 배를 사기 위해 모은 돈은 조금씩 사라진다. 홍아는 성욕과 소유욕이 강한 여자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섹스를 요구하기도 하고, 옷과 패물에도 욕심을 드러낸다. 진두는 도둑질까지 해가며 그녀의 욕구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진두는 강도 높은 막노동과 섹스로 지쳐간다. 그럴수록 홍아의 요구는 더욱 거세진다. 결국 지칠대로 지친 진두는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마침 홍아가 아이를 유산하자 미련 없이 그녀를 떠난다. 홍아는 고향으로 가는 진두를 소유하려 끝까지 악착을 떤다.

 

이영실 감독의 <반노>는 기대했던 것 보다 더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감독의 연출력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도 부족하지 않다고 느꼈다. 촬영이나 편집 뿐만 아니라 감독 본인의 직접 한 각색도 흐름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자신의 데뷔작품에서 이영실 감독은 꽤 진가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단명이 좀 아쉬울 정도.

 

반노는 평소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여성 캐릭터인 홍아를 선보인다. 그녀는 신상옥 감독의 1958년 작품 <지옥화>에 등장하는 소냐를 많이 연상시킨다. 그야말로 자신의 욕망에 너무 충실하여 남자를 파멸시키는 여자. 재미있는 것은 <지옥화>에서도 그렇고, <반노>에서도 그렇고 남자주인공이 그녀들의 거미줄에서 스르르 잘 빠져 나온다는 것도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강렬한 캐릭터인 홍아는 결국엔 일종의 사이코패스라고 할 만하다. 남자를 파과하고 마는 이런 팜므파탈은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에 마지막엔 제거된다. 여기에는 공통적으로 모성애가 하나의 대체제로 등장한다. 모성애는 파괴하는 사랑이 아닌 쌓아올리는 사랑이라고 할까? 그러므로 어머니로 대표되는 모성애는 일종의 아가페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어머니가 있는 고향은 모성애가 있는 공간이 되어 진두가 꼭 가야할 공간이 되는 셈이다. 그런점에서 모성애가 결핍된 홍아의 유산은 당연한 수순이 된다.

 

결국 이 영화는 쾌락이 주가 되는 성욕과잉의 섹스 대신 정신적인 사랑이 더 가치 있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파격적인 영상과 섹스 장면이 등장하지만 육체적 사랑은 유한한 것이고, 아가페적 사랑이야말로 무한하다고 말하는 영화가 된다. 58년도 영화인 <지옥화>에서는 남주인공이 조신한 여자를 데리고 귀향하지만, 82년 작품인 <반노>에서는 진두 혼자 귀향한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르다. 왜 그럴까? 25년의 간극과 한국사회의 변화를 연관지어 생각해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저 그런 80년대 에로영화의 단골 남자 배우라 생각했던 마흥식이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개봉 : 1982년 10월 17일 단성사

감독 : 이영실

출연 : 원미경, 마흥식, 남수정, 문태선, 지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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