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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을 보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써니>를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영화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마케팅은 9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닌 세대의 공감대를 끌어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80년대 후반 고등학교를 다닌 세대의 공감대를 끌어내려고 애쓰던 <써니>가 그대로 오버랩 되었다. 나는 <써니>의 마케팅에 그대로 이입되었고 덕분에 <써니>는 2011년에 내가 본 가장 재미있는 영화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건축학개론>은 처음부터 내가 공감대를 형성할 뭔가가 부족하겠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은 리차드 샌더슨의 리얼리키가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게 과거를 환기하고 시대를 추억하며 가슴 시리게 만들지는 않았다. 내게 <건축학개론>은 고급스런 멜로드라마로서 의미가 더 컸다. 멜로라는 장르로서 이 영화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 풋풋했던 사랑은 철없는 오해로 이별이 되고, 다시 찾은 사랑은 현실적 상황 때문에 다시 한번 이별한다는 그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 사이엔 오해로 만들어진 15년이란 세월이 있다는 것도 같이 끼워 넣으니 그들의 사랑이 인생이 되는 과정에 가슴 시린 감정이 오롯이 내려 앉는다. 내 나이의 나에겐 잃어버린 15년의 세월과 지금 2012년의 승민(엄태웅)과 서연(한가인)이 추억을 환기하는 95학번의 1995년의 승민(이제훈)과 서연(수지)보다는 더 정이 간다. 깨알같은 재미는 과거에 있는게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왜 건축학개론일까 한번 생각해 보게된다. 건축이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려 만들어가야 하듯 사랑도 순간순간의 감정이 쌓여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들에게 잃어버렸던 15년동안 승민에게 서연은 나쁜 여자였고, 서연에게 승민은 미친 새끼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해가 만들었던 기억이 휴대용 시디플레이어로 다시 재생될 때... 처음으로 기억의 습작이 좋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 내가 좋아하던 팀은 삐삐밴드였다. 솔직히 전람회의 노래는 고리타분해서 듣기조차 싫었던 노래였다. 노래방에서 설탕에 찍어 딸기를 먹는다고 목이 터져라 불러대던 나였지만, 여전히 김동률의 멜로디를 좋아하진 않지만, 영화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 노래인 건 사실이다.
<건축학개론>은 감정을 판타지로 만들어 로맨틱 코미디식의 해피엔딩이 아니라 현실적 무게를 충분히 반영한 어른들의 러브스토리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로코의 공식대로 그들은 마지막에 키스를 나누며 결합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판타지를 무시한 현실적인 결말일지도 모르겠지만, 1995년의 시공간과 2012년의 시공간은 다르다는 것을 직시한다는 것은 이제 어른들의 세계에 그들이 살고 있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적, 장르적 상상력마저 봉인할 필요는 없다. 사실 영화 내내 그들의 사랑은 완성되어졌기 때문에 현실적 결합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승민은 벽돌을 하나하나 쌓듯 서연의 제주집을 복원한다. 1995년에 서연이 원했던 이층집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그 집에서 한가인은 살고 있다. 어쩌면 서연은 승민의 품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승민과 서연은 사랑을 완성한 셈이고, 이용주 감독은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를 아우르는 드라마를 우아하게 완성해 내는 연출력을 입증한 셈이다. 관객은 재미와 감동을 얻었으니 이야말로 일석삼조.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그 순간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좋아지고 있는 영화라고 해야겠다.
개봉 : 2012년 3월 22일
감독 : 이용주
출연 :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 조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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