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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승 감독의 <후궁:제왕의 첩>을 보면서 신상옥 감독의 <내시>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거의 리메이크라 할 정도로 보였다. 화연(조여정)과 권유(김민준)의 관계설정도 유사해 보였지만, 특히 금옥(조은지)의 에피소드는 직접적으로 <내시>와의 연관성을 짐작하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는 내시를 많이 참조한 영화였더라. 신상옥 감독의 <내시>도 무척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김대승 감독의 <후궁>도 꽤 재미있게 봤다. 무엇보다도 속도감이 돋보였다. 물론 이 속도감 때문에 인물의 내면에 몰입할 여유가 부족해진 것은 단점이지만, 어쨌든 즐기기 위한 오락영화로서는 준수해 보였다.

 

<후궁>은 중독에 관한 영화다. 세명의 주인공 화연, 성원대군(김동욱), 권유는 지독한 사랑에 중독된 상태다. 특히 성원대군의 사랑이 인상적인데, 그의 지독한 사랑은 이 영화의 모든 비극의 1차적 원인이지만 또한 무엇보다 순수하다. 그의 일방적인 화연에 대한 몰입. 그래서 그의 사랑은 비현실적이고 치명적이다. 반면 애증으로 변하는 권유의 사랑은 현실적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제 화연의 마음에 그들에 대한 사랑의 자리가 없다는 것. 성원대군도 권유도 화연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왜나햐면 화연에게 아들이라는 새로운 사랑의 대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기서 <후궁>의 두 번쨰 중독이 등장한다. 바로 권력에 대한 중독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권력에 대한 중독이 남성이 아닌 여성의 집념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여자들의 권력투쟁의 장에서 성원대군의 대사처럼 임금은 씨돼지의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그런점에서 <후궁>은 제목처럼 여성들의 권력투쟁의 이야기다. 대비, 중전, 상궁, 나인의 씨돼지를 둔 한판 전쟁. 가장 천박한 모습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금옥이 보여주는 행태는 사실 대비나 화연의 모습과도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권력에 대한 욕망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한낱 치기로 강등시켜 버릴 정도로 강렬하다. 사랑이란 너무 아마추어적인 감정인 셈이다.

 

물론 이런 욕망의 지옥도는 탐욕이라는 한 단어로 경멸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김대승 감독이 이 모든 것 위에 괴물화되어버린 모성에 대한 근심과 공포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대비가 드러내는 위압감이나 공포는 그녀가 가부장적 아버지의 자리에 앉으려고 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연약해 보이던 화연이 서서히 카리스마를 갖춰가는 것 역시 그녀가 가부장적 아버지의 자리에 올라앉겠다는 욕망을 드러내면서 부터다. 권유가 자신의 아이를 잘 키워달라고 부탁할 때, 화연은 그 아이는 너나 선왕의 아이가 아니라 나의 아이라 말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화연의 어린 아들은 임금의 자리에 가서 장난친다. 하지만 화연의 눈빛은 그 뒤 커튼뒤의 수령첨정의 자리에 가 있다. 아들을 지배하고자 하는 어머니의 욕망. 이것을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손바닥에 올려 놓고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는 한국사회(특히, 강남으로 대표되는)에 대한 알레고리로 간주해 본다 해도 크게 엇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개봉 : 2012년 6월 6일

감독 : 김대승

출연 : 조여정, 김동욱, 김민준, 박지영, 조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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