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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은 1978년에 <족보>라는 걸출한 작품을 만들면서 앞으로 한국영화계의 거장이 될 초석을 다졌다. 더불어 임권택 감독은 1978년에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두 편 만든다. 바로 북한 어린이와 남한 어린이의 비극적인 우정을 다룬 <가깝고도 먼 길>과 한 소년의 성장담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어린이가 주인공인 이 두 편의 영화가 어린이용 영화에서 기대함직한 밝은 기운을 그다지 내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임권택 감독은 어린이를 마치 어른처럼 다루고 있다.

 

장난꾸러기 환(이영수)은 공원에서 친구들과 야구시합을 하던 중 나무에 있는 새집을 떨어뜨린다. 마침 공원을 지키던 할아버지가 새집을 다시 올려주려다 실족하여 병원에 실려간다할아버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의기소침했던 환은 바닷가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아이처럼 즐겁게 놀지만 문득 우울해지는 환. 어느날 물고기를 잡기 위해 혼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환은 파도에 떠밀려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게 된다. 그의 실종은 언론에 대서특필된다. 환은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지혜를 짜내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열흘 후 환은 기적적으로 중국배에 구조된다. 무사히 귀국한 환을 반기는 사람들 중에는 공원지기 할아버지도 있다. 환은 이제 장난치지 않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기로 결심한다.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는 죄책감이 빚어낸 사건이다. 공원지기 할아버지를 다치게 했다는 죄책감은 환을 멀리 바닷가 할아버지 집으로 가게 했고, 다시 더 멀고 먼 바다 한가운데로 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임권택 감독은 그 곳에서 어린 환이가 속죄의 의식을 치르게 만들었다. 고통 받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밟히는데도 불구하고 이석기 촬영기사가 아름답게 찍은 바다를 보며 감탄을 하고 있으려니, 마치 내가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하지만 임권택 감독은 단호하다. 어린이라 할 지라도 자신의 죄는 스스로 속죄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물론 틀린말이 아니긴 하지만, 임권택 감독이 보여주는 속죄의 통과의례는 그야말로 지옥의 체험이다. 하지만 이런 설정을 보면서, 임권택 감독이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해 상당히 무감각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자신의 영화의 주인공인 어린이라는 대상에 대해 애정이 없어 보였다. 그러니까 어린이 세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가깝고도 먼 길>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결국 환은 스스로 속죄를 흘륭하게(?) 해냈고, 착한 어린이가 되겠다고 맹세까지 했으니 아마 앞으로는 어른들이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어린이와 청소년이 될 것이다. 이것이 임권택 감독이 원했던 이상적인 어린이의 모습이었던 걸까? 결국 임권택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를 잘 활용하여 한 편의 훌륭한 영화는 만들 수 있었지만,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그러니까 임권택 감독은 어린이를 어른처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처절하게 속죄해야만 하는 어린이밖에 상상할 수 없었다면 임권택 감독의 유년시절이 썩 행복하진 못했던 것 같다.  

 

PS

포스터 속의 여인은 엄마의 얼굴이 아니다. 바로 몇 년 후 임권택 감독의 부인이 될 배우 채령의 모습이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환과 친구가 되는 기자로 출연했다. 그 외 작곡가 주영훈이 환의 친구로 잠시 등장한다.


개봉 : 1979년 6월 8일 전주중앙극장

감독 : 임권택

출연 : 이영수, 주선태, 윤양하, 채령, 진봉진, 주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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