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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이 올레TV 에 있길래 또 보았다. 여러 번 보는 거지만 역시 볼 때마다 재미있고 새로운 것들이 숨어 있다 나타난다. 어떻든 이제는 스토리를 다 알기 때문에 좀 더 세부적인 면을 볼 수 있는데, 그동안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보았던 사회 정치적인 면등등을 떠나 이번에는 정말로 주인공인 이 20대 초반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영철의 방황이나 병태의 패배주의 등이 더 잘 보였던 것 같다.

 

70년대라는 유신 상황에서 병태와 영철, 영자와 순자는 모두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데, 그것이 현실에 안착해 있지는 않은 것 같은 느낌에 서글프더라. 그렇다면 그들은 꿈이 없거나, 혹은 꿈을 꿀 줄도 모르거나, 아니면 꿈을 꾸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하길종 감독은 이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의 젊은이들이 하나같이 패배주의에 빠져 있고, 그것을 극복할 만한 배짱도 부족하다고 생각 한 것은 아닐까? 안타깝게도 그 패배주의의 빈 자리에는 하나같이 권위적인 교수로 종종 나타나곤 하는 어른들 소위 기성세대들, 그러니까 그들은 당시  한국이라는 사회를 꿈조차 꿀 수 없는 나라로 만들었던 원흉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숨 쉬고 있는 젊은 대학생들은 꿈을 상실한 채 공허만 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여자 아이들은 젊을때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가겠다는 현실적인 꿈 정도는 꾸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마저 원천 봉쇄되어 있는 남자아이들은 뭔가 살아남을 꿈을 꾸어야만 하는 데 그게 쉽지가 않다. 영철은 빨뿌리장사를, 병태는 병태의 꿈을 꾸어보지만 말이다. 이렇게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에 꿈이 단지 허공에 떠도는 구름 같은 존재처럼 묘사되고, 현실로 안착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참 웃프다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 장면에서 군대에 가는 장면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더라. 군용열차에 앉아 있는 병태의 공허한 표정이 결국 제도권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의 모습이었다면, 영자의 키스는 한 줄기 희망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 또 볼수록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찌릿찌릿 폐부를 파고드는 영화다. 병태의 꿈으로부터 이제 40여 년이 지났다. 병태의 꿈을 앗아갔던 그 시절의 유령들이 사라지지도 않고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는 2015년이다. 하길종 감독의 선견지명이었을까? <바보들의 행진>은 다시 보면 볼수록 더 좋아지는 영화인 것 같다.


개봉 ; 1975년 5월 31일 국도극장

감독 : 하길종

출연 : 윤문섭, 하재영, 이영옥, 김영숙, 하명중, 김희라, 이기동, 문오장, 이일웅, 윤일봉

       박암, 최남현, 이승현, 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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