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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장호 감독의 <영녀>가 시작되면 어안렌즈로 심하게 굴곡되어 나타나는 서울 도심이 보인다. 뭔가 비정상으로 보이는 분위기는 곧 강박사(남궁원)가 심각한 공해문제에 대해 강의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면서, 이 세상이 공해로 인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근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앵글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곧 이어 강박사는 아내인 정희(고은아)가 과대망상형 도착증으로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정신과 의사는 이 병의 원인으로 중년 여성의 소외감 외에 공해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곧 우리는 정희가 남편 강박사의 영향으로 환경오염문제에 심각한 편집증이 있음을 알게 된다. 강박사와 제자 나미(유지인)는 정희를 현실적인 상황으로 되돌리는 방법은 질투를 유발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곧 나미는 그들과 동거를 하게 되고, 서서히 정희는 그들의 관계를 의심하며 질투를 느끼기 시작한다.

 

1970년대는 일본에서 발병한 이타이이타이병등으로 인해 환경오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던 시기였다. 변장호 감독은 이러한 사회적 이슈와 함께 중년 부인의 소외감이라는 전통적인 한국적 소재를 결합해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주제는 꽤 무겁고 진지한 편에 속한다. 소재와 적절히 잘 연계하여 완성하면 걸작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변장호 감독은 주제와 소재를 적절히 섞어 선보이지는 못했다. 환경오염이라는 문제가 현대인의 소외감이라는 정신분석적인 문제와 연동될 수 있는가를 탐구하기에는 변장호 감독의 내공이 부족해 보였다.

 

결국 <영녀>는 삼각관계에 얽힌 진부하다면 진부한 치정극으로 끝나버리고, 정희는 완전히 정신병자가 되어 병원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만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나마 현실적으로 보이는 인물은 정희다. 강박사도 그렇지만 특히 나미의 행동은 쉽게 공감하기가 쉽진 않더라. 당시 한국영화에서 20대 초반의 여자가 중년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설정을 자주 보여주긴 해도 말이다.

 

하지만 공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공해문제에 대한 플래카드를 들고 가두행진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실소를 넘어 그냥 썩소를 지을 수 밖에 없더라. 이 마지막 장면만 없었어도 그런저런 치정극 한편 봤네 했을텐데, 갑자기 영화가 코미디가 되어버렸다는...

 

개봉 : 1979년 9월 1일 국제극장

감독 : 변장호

출연 : 남궁원, 고은아, 유지인, 유장현, 엄유신, 방수일 김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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