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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세 감독의 <태양을 훔친 여자>는 비밀의 간직한 배정숙이라는 여자의 이야기다. 그녀는 주로 소설가인 유태준의 시선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그러니까 유태준이 궁금해 하는 만큼 관객들은 궁금해하고, 유태준이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되는 만큼 관객들도 알게 된다.

 

정숙(김자옥)은 귀갓길에 자신을 따라오는 소설가 유태준(박근형)과 하룻밤을 보낸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워진 두 사람은 서로 조금씩 자신에 대해 숨기는 것이 있다. 하지만 곧 유태준이 이혼한 상태이며, 아내는 정숙에게 태준을 부탁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가 어떤 사연으로 이혼했고, 왜 아내가 그토록 정숙에게 관대한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이제 남은 건 정숙의 비밀. 그녀에겐 자신이 남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대근)이 찾아오고, 민상기라는 남자도 찾아온다. 유태준은 정숙을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그들과 동일선상에 놓고 정숙의 비밀을 궁금해 한다. 게다가 정숙은 오후 2~5시까지는 남자와 약속이 있다며 사라지기까지 한다.

 

결국 정숙의 비밀은 이랬다. 고아였던 정숙을 옆집 오빠(이대근)가 키워주었고, 그들은 결혼해 딸 민정을 낳았다. 하지만 그때 장승포로 온 의료봉사단의 일원인 민상기와의 관계를 의심한 남편의 폭력이 있었고, 정숙은 자신의 결백을 위해 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려고 한다. 그걸 상기가 구해주었고, 정숙은 모든 과거를 잊고 서울로 온다. 이후 상기에게도 버림을 받은 후, 어느 회장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유태준을 만나게 되었던 것. 회장의 죽음과 함께 약간의 유산을 상속받은 정숙은 자신의 딸 민정을 키우려고 하나, 자신을 엄마로 인정하지 않는 민정은 아버지를 따라 간다. 정숙은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역시 이원세 감독의 작품답게 영화가 대체적으로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스토리라인은 당시 한국영화에서 자주 보던 멜로드라마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하지만 스토리를 끌고 가는 방식에서는 진부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물들간의 불필요한 오해와 질투로 극적 상황을 자극적으로 전개하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보니 인물들이 다 결이 살아있어 그들 하나 하나의 행동에 동기를 잘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 자체가 안정감이 있어 보였다. 여기에는 시나리오를 쓴 소설가 김승옥의 협력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태양을 훔친 여자>가 독창적이라거나 비범한 결말을 보여주는 영화라는 말은 아니다. 결말을 짓는 방식이 마음에 쏙 드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구조를 위해 정작 중요한 배정숙의 삶에는 무관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통속으로 불릴 만한 장르에서 꽤 근사하게 영화를 뽑아 낸 이원세 감독의 연출은 좋았다. 그리고 김자옥과 박근형의 연기도 훌륭해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개봉 : 1979년 11월 17일 국제극장

감독 : 이원세

출연 : 김자옥, 박근형, 이대근. 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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