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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런 것이 사나이의 간지라고나 할까?
빠른 손동작이 우아한 발레가 되어 다른 이의 호주머니에서 춤을 추고,
손끝의 감각이 척추를 타고 올라 평온해진 얼굴에 번지는
여유를 간직하면서도 살짝 냉소를 머금은 미소.
회색수트를 입고 어깨엔 카메라를 둘러맨
유유자적 도시를 미끄러지는 그 이상적 마초의 모습.
그래
그 간지는 아무나 몸에 걸치는 게 아니지...
그렇지
스타일이 살아 있다는 두기봉의 영화속에서
그렇게
그 촌철살인의 슬로우 모션 속에서
더불어
감독의 세계관을 표현해내는 배우의 연기를 통해
그 마초는 생명력을 얻고
그 간지는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두기봉 영화에서 스타일은 내러티브를 넘어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두기봉의 영화는 그 스타일의 완성이 영화의 완성이라 할 만 하다.
그가 2000년대 이후 발표한 영화중에서는
<익사일>, <매드 디텍티브>, <문작> 3편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 독특한 영화적 리듬만큼은 꽤 매력적이었다.
그건 영화가 재미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벗어나는 것 같다.
문작은 참새라는 의미이면서 소매치기의 은어로 사용되는 단어다.
하지만 영화속에서는 새장안에 갇혀있는 새의 의미가 가장 강한 것 같다.
케이가 자신의 방이 그대로 내려다 보이는 춘리의 방에 가서 본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새장의 미장센은 촌스럽지만 직설적으로 갇혀있다는 의미를
드러내기도 한다.
문작은 케이의 소매치기 패거리인 4명의 남자들이
의도적으로 접근한 춘리를 푸대인의 구속으로부터 풀어낸다는 이야기다.
여타 직업이 많겠지만 그 남자들의 직업을 경찰도, 운동선수도, 평범한 회사원도
하물며 조폭도 아니고 소매치기로 설정한 것 자체가 꽤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고 생각된다.
영화는 길거리에서 케이와 그 패거리들이 소매치기하는 장면을 경쾌한 리듬으로 보여준다.
두기봉 감독은 소매치기라는 행위속에서 범죄적 의미를 걷어낸 후 남는 것에 주목한다.
그것은 지갑이 호주머니를 벗어나 세상밖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갑의 의지와는 상관없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푸대인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찾으려는 춘리는 적극적인 자기의지를 가진
지갑(혹은 그 비슷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영화 속에서 가장 간지나고 정말 정말 멋진 장면이라고 할만한
빗속에서 푸대인의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여권을 빼앗는 장면은
그로부터 춘리를 소매치기해오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감금의 이미지가 돋보이고 시각적 스타일이 돋보이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문작에는 정서적 반향이 남다른 순간이 있다고 느꼈다.
아마도 그것은 남자들, 마초들의 순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기봉 감독이 노리는 것도 그 남자의 순정이라는 부분일 것이다.
그들이 소매치기를 하든 말든,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든 말든
지나치리만큼 아름답게 촬영된 빗속에서의 소매치기 장면은
푸대인이 춘리를 놓아주고 목 놓아 우는 장면과 함께 감정의 낭만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마초의 순정이기 때문일까?
울고 불며 매달리지 않고, 싫다고 떠나는 여자를 붙잡지 않는 것.
옛날영화의 남자가 가슴으로 울음을 삭였다면, 시대가 변한 요즘은
그나마 눈물을 보이며 울 수 있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까...
그러므로 문작은 누구보다도 남자들의 멜로드라마라고 할만하다.
푸대인처럼 케이를 비롯한 4명의 패거리들은 저마다 춘리를 가슴에 품지만
붙잡지 않는다.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여인의 행복이 남자인 자신의 곁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마초적 환상을
이제 마초들은 내려놓아야 한다.
여인의 자유는 여인의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고나 할까...
그래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말하지 말자.
어쨌든
그들에겐 간지가 남았고
두기봉에겐 여전히 스타일이 남아있으며
참새에겐 자유가 찾아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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