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977년에 개봉된 박호태 감독의 <성난 능금> 1963년 김묵 감독이 발표한 동명 영화의 리메이크영화다. 1963년 작품은 꽤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 하지만 필름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쉽게도 영화의 완성도를 확인할 길은 없다. 반면 박호태 감독의 <성난 능금>은 그저 평범했다. 내용 자체는 꽤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것은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당선작이었던 각본가 임하씨의 공이라고 봐야 한다. 박호태 감독의 연출은 좀 밋밋해 보였다.

 

사생아인 청(이덕화)은 아버지를 찾아 과수원으로 온다. 어머니가 임종 직전 알려준 사실이다. 하지만 아버지(장동휘)는 현재의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를 외면한다. 섭섭한 마음이 가득한 청은 아버지를 괴롭힐 심산으로 과수원의 인부가 된다. 서울에 유학하고 있는 형(이동진)이 여자친구(임예진)와 함께 내려온다. 자신의 이복동생인지 모르는 형과 청은 사사건건 갈등한다. 여자친구는 청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한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아버지는 청을 내쫓기로 결심한다. 청 역시 떠나기로 결심하지만, 그날 폭풍우가 불어 과수원 창고가 무너지며 아버지가 갇히는 사고가 발생한다. 청은 목숨을 걸고 아버지를 구하지만, 끝내 아버지는 죽고 만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했던 청은 미련없이 과수원을 떠난다.

 

어떻게 보면 엘리아 카잔의 <에덴의 동쪽>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어쨌든 상당히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심리를 제대로 형상화하지 못한 연출이 빛을 바래게 하고 말았다. 그래서 아쉽다. 특히 여주인공인 임예진은 당시 청춘스타이긴 했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미스캐스팅이다. 반면 청을 좋아하는 과수원 인부로 출연하고 있는 20살 앳된 미모의 김해숙의 존재감이 두드러져 보였다. 그녀가 그렇게 긴 생명력의 연기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떡잎이 탄탄했기 때문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녀는 지금까지도 한국영화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가진 대표적인 중견배우가 되었다.

 

어쨌거나 청이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면서 질풍노도의 반항을 보여주고, 아버지의 집안을 풍지박산을 만들어 버리는 것도 꽤 좋았을 것 같지만, 박호태 감독은 이 부분에서 지나치게 머뭇거린다아마 그의 사고가 그걸 허락치 않아 보였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한 청의 행동은 버림받은 자의 치기로만 보이고, 반항이 사라진 자리에는 뜬금없이 모범에의 강요만이 자리잡는다. 그러니까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기존 질서가 잘났든 못났든 흠집을 내지 말라는 강요처럼 보인다. 오리지날 시나리오가 꽤 근사하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동안 재미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나리오가 말하고자 했던 주제를 감독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때, 영화는 참 밋밋해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나무에 달려있는 사과들을 볼 수 있다. 열매로서의 사과가 정말 예쁘다는 거 처음 알았다. 정말 빨갛고 탐스러운 사과더라니까… 


개봉 : 1977년 2월 18일 허리우드극장

감독 : 박호

출연 : 이덕화, 임예진, 장동휘, 이동진, 김해숙, 최남현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