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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수 감독은 1980년대 중반 <어미>, <안개기둥>이 주목을 받으면서 당시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위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던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1979년에 개봉된 <밤이면 내리는 비> 1978 <골목대장>으로 데뷔했던 박철수 감독의 두 번째 작품으로 초기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에서 묘사되고 있는 여성, 즉 여주인공 가희는 지금의 관객인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좀 힘든 캐릭터였다. 더군다나 페미니스트처럼 알려져 있는 박철수 감독의 작품이라 더 이질적으로 느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치원 교사인 가희(김영란)는 뒷산에서 들려오는 구슬픈 노래 소리에 이끌려 산을 오른다. 어느 무덤에 누워 노래를 부르는 한 남자를 발견한 그녀는 곧 뒤돌아 서지만 이내 그 남자에게 강간을 당한다가희는 방황한다. 사랑하는 애인 영우(이영하)도 멀리하기 시작한다. 가희는 어느날 권투시합 경기 포스터속에서 그를 강강했던 남자 황사빈(이덕화)을 발견한다. 경기장으로 찾아간 가희는 두들겨 맞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연민을 느끼게 된다.

 

가희는 힘들게 자란 가난한 그를 구원하기로 한 듯 영우를 멀리하고 사빈에게 마음을 준다. 사빈 역시 그런 가희를 좋아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가희를 포기할 수 없었던 영우는 사빈을 찾아가 그를 돕는다. 그를 자립시키고 가희의 마음을 다시 되돌리려 했던 것. 그러나 가희는 끝내 사빈을 선택한다.

 

어떻게 보면 가희는 그야말로 모성애적 연민으로 가득차 있는 착하고 천사 같은 여자다. 모든 남자가 꿈꾸어 보는 이상형이다. 그런데 가희는 단 한번도 사빈에게 강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사빈 역시 그 일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이 영화를 일그러지게 만든다고 생각된다. 영화의 만듦새는 신인감독으로서의 박철수 감독의 능력을 보여주는 데는 실패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박철수 감독이 2013년까지 길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감독이 될 만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선뜻 받아들이기가 힘든 것은 바로 가희라는 여주인공 때문이다. 그녀는 왜 단 한번도 사빈에게 강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걸까? 이건 박철수 감독 또한 이 문제를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으로 밖엔 설명되지 않는다. 이후 여성영화감독으로 명성을 떨치게 될 감독의 초기 영화가 이런 식이었다는 게 불균질적으로 느껴지고 좀 안타깝다.

 

이 영화는 지금에서 보면 완전 초호화 캐스팅이다. 주인공 김영란, 이영하, 이덕화를 비롯. 조연으로 가희의 아버지 역으로 박근형이 나온다. 근데 너무 젊어 김영란의 오빠처럼 보인다는..^^ 가희의 동생으로 나오는 어린 금보라를 보는 재미도 있다. 이들 모두가 한 사람 만으로도 충분히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한국의 대표 배우들이 되어 지금도 만날 수 있다.


개봉 : 1979년 9월 28일 코리아극장

감독 : 박철수

출연 : 김영란, 이덕화, 이영하, 박근형, 금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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