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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안간힘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을까?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지향, 만약 이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나를 지탱해주는 정체성에 대한 갈망이 인간이 지닌 가장 보편적인 욕망중의 하나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라이언 플렉 감독의 하프 넬슨(Half Nelson)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이다. 영화는 인간사의 외연을 차지하고 있는 거창한 거대담론과는 다른 내면에 숨어있는 개인담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거대담론은 항상 인간의 개인담론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영화속에서 그것을 강조하지는 않지만 서브 플롯으로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역사속에서 일어나는 모순적인 상황을 통해 그것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어리석거나 나약한 존재라서 개인의 모순을 극복하기가 너무 힘들고 나아가 거대담론의 모순은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댄 던(라이언 고슬링)은 마약 중독자다. 첫 장면 팬티바람에 셔츠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허공을 바라보는 공허한 눈동자를 가진 댄 던은 중학교에서 8학년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이다. 그는 세상사의 대립에 대해 얘기하고, 화합하지 못하는 관계에 대해 얘기한다. 교장선생님은 시민권에 대해 강의하라고 재촉하고, 동료 선생은 8학년에겐 너무 어려운 내용이 아니겠느냐며 은근히 그의 의지를 치기로 격하시키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 의지가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이렇게 의식 있고 세상 돌아가는 모순에 대해 발언하며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학생들과 토론하고 잘못된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바로잡고 싶으며 한사람이도 구할 수 있으면 구해야 한다는 좌우명을 가진 댄 던은 흑인이며 할렘에 살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약딜러밖에 없을 것 같은 앞이 꽉 막힌 드레이라는 소녀를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구해 보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엔 약간의 모순이 있다. 드레이는 댄보다 오히려 더 자신을 잘 콘트롤 할수 있는 소녀이기 때문이다. 댄은 선생이라는 직업의식과 사명감으로 제자인 드레이에게 구원의 투수가 되고 싶어한다. 드레이의 오빠를 마약 딜러로 만들어 감옥에 보낸 프랭크가 접근하는 것을 나름대로 막아보려고도 하며, 항상 혼자 있는 드레이의 말상대가 되줄려고도 한다. 하지만 댄은 이런 행동이 자신이 밑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위장된 자위임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드레이를 둘러 싸고 있는 모든 상황이 댄의 의지보다는 드레이의 의지에 의해 제지되거나 이행되거나 하기 때문에 그의 노력은 허공을 맴돌고 있는 셈이다.

 


왜 그럴까? 이제 다시 앞으로 돌아가야 할 시점이다. 팬티바람과 와이셔츠를 입은 채 공허한 눈빛을 한 댄은 전날 밤 아마 마약을 흡입하고 정신줄을 놓고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는 극복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되뇌이며 학교에 출근해 학생들에게 대립과 화합에 대해 얘기한다. 하지만 댄의 내면에는 이런 자신의 행동이 모순적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것이 댄을 괴롭히는 두 번째 괴롭힘이다. 첫 번째는 당연히 마약중독이다. 예전의 여자친구인 레이첼이 성공적으로 마약에서 벗어난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여전히 중독 상태이다. 드레이가 선생님이 아니라 친구로서 댄에게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할때, 마약상 프랭크는 마약중독자에게 친구란 없다라고 충고한다.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은 드레이는 하지만 그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는 실망스런 결과를 받아들고 만다. 댄은 드레이가 위로하려고 할 때 나는 너의 선생이라며 계급관계를 확인시킨 후 매정하게 돌려보낸다. 그의 이런 행위는 드레이가 마약딜러가 되게 만드는 모순을 발생시킨다. 그가 그토록 부정하려고 했던 모순을 댄은 스스로 자초하고 만 것이다.

 


댄과 드레이는 자신이 가장 되고 싶지 않았던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댄과 던은 가족문제를 안고 있다. 흑인인 드레이의 가정은 부모의 이혼과 생계를 위한 엄마의 강도 높은 노동, 감옥에 있는 오빠처럼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댄의 가족은 전형적인 미국의 중산층 가족으로 등장한다. 아버지는 댄의 사상을 놀리듯 인종차별적인 말을 내뱉고 곧 사과하는 시늉을 하며, 어머니는 아들을 걱정하지만 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하지만 드레이가 고통을 겪을때 그녀의 엄마는 노동에 지친 몸을 이끌고 와서 위안이 되어주지만, 댄의 어머니의 음성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텅 빈 댄의 집안을 울린다. 엄마의 음성이 전달되지 못하는 이미지는 견고한 집과 넓은 정원을 가진 집이지만 속에서 무너지는 미국 중산층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가장 잔인한 이미지는 다음에 나온다. 가족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댄은 어쩌지 못하는 공허함에 창녀들과 마약파티를 벌인다. 그곳에 마약을 팔기 위해 찾아온 드레이. 바라보는 두사람의 눈빛은 끝까지 숨기고 싶은 가장 부끄러운 것을 들킨 사람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체념의 순간. 댄은 마약이 너무 필요하다. 선생이라는 사명감도 여기선 댄을 지켜주지 못한다. 자신이 구원해보려고 했던 드레이에게 지폐를 내밀며 마약을 받는 댄. 친구가 되고 싶었고 자신이 사랑했고 친구가 되고 싶었던 사람의 가장 처절한 모습을 보고 만 드레이의 충격. 얼마나 가슴 아픈 장면인지...

 


결국 댄은 자신이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다고 설치고 다니면서도 정작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몰랐다. 댄은 자신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진정한 관계에서 비롯된다. 가족이 줄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듯 그 낯선 이방인들이 내미는 손길에서 따뜻한 희망의 씨앗을 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음날. 드레이는 댄 선생님을 찾아간다. 옷도 입지 않은 채 침대 커버를 둘둘 말고 나타난 댄은 자신이 사랑했던 어린 제자의 따뜻한 눈빛을 느낀다. 자신의 가장 초라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었던 그는 이제 가면을 벗었다. 프랭키를 거부한 드레이를 보며 자신이 한사람을 구원했음을 느낀다. 그리고 수염을 깎고 단정한 옷차림으로 드레이와 함께 앉아 있다. 이제 타인에 의해 자신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영화는 희망을 얘기하며 끝난다. 진실한 모습과 관계. 이제 댄과 드레이는 희망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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