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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그린존>은 꼭 봐야되는 영화였다.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맷 데이먼의 조합이라니...두말할 것 없이 그들은 내겐 환상의 짝궁이다. 그런 점에서 폴 그린그래스가 이라크전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꽤 좋은 영화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전쟁영화를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건 팬덤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감독과 배우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이라크전에 관한 영화는 이제 후일담까지 해서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허트 로커>는 마치 전쟁터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생생함을 성공적으로 전달하였고, 리얼한 전쟁영화란 무엇일까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하기도 했다. 사실 내겐 지루했던 영화인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오프닝 장면이 보여준 박진감은 인상적이었고, 이 영화 이후 전쟁영화는 총격씬의 묘사에 있어 좀 더 사실적인 화면과 속도로 구성되면서 고전 전쟁영화의 리얼리즘과는 다른 느낌을 주기 시작했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블랙 호크 다운>이 보여준 다큐멘터리적 질감은 이후 전쟁영화의 전형이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또한 전쟁을 현장의 스텍터클보다는 CNN에서 보여 주는 화면 속 거친 질감의 세계를 영화가 모방한 TV적 리얼함이기도 할 것이다.
<그린존>은 2차 이라크 전쟁의 원인에 대한 의문을 극화했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이미 다 알려진 사실에 대한, 그리고 현재 부시 행정부가 물러난 상태이기 때문에 영화는 뒷북치기 스릴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와 ‘누구’에게 매달리며 사건을 해결하는 한명의 군인은 마치 느와르 영화속의 탐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화면까지 어두우니 정말 그럴싸하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린존>은 바로 그 시간, 그 장소에서 그 인물들이 재현하는 것 같은 화면을 만들어냈지만 <허트 로커>와 같은 사실성까지는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영화적 재미는 <그린존>이 훨씬 뛰어났던 것 같다. 게다가 이미 익숙해져 버린 폴 그린그래스의 핸드헬드 카메라는 전쟁영화속에서 사실감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이 영화는 결국 WMD(대량살상무기)를 꼬투리로 침략전쟁을 일으킨 부시행정부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된 영화이기는 하지만, 그 이면을 파헤치면서 중동의 현실과 함께 이라크 내부의 권력다툼이 미국의 침략을 용인한 것은 아니었는가를 같이 물으면서, 전체적으로는 비판의 수위를 약간은 조절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흥미롭게 본 지점은 프레디라는 인물이었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밀러(맷 데이먼)과 파운드스톤(그렉 키니어)의 충돌이라는 내러티브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며 재미를 만들어냈고, 비판의 수위를 조절하며 겉으로는 장르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무난한 상업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폴 그린그래스가 발언하고 싶어하는 영화감독으로서의 욕망은 포기하지 않았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화면의 시점을 밀러에서 프레디로 교묘하게 이동시킨다. 내러티브의 큰 줄기를 밀러가 가져가는 대신 프레디는 서브 플롯을 통해 감독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한번 살펴보면 <그린존>은 아주 전형적인 영화이며, 서스펜스 스릴러의 공식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그런점에서 이 영화는 <시리아나>와 <만츄리안 캔디데이트>와 같은 꽉 짜여져 있는 정치스릴러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반면 또 그만큼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지 못한 영화라고도 말할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장르의 틈바구니 속에서 밀러가 아닌 프레디에게 알 라위를 처치하게 만든 것은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라크의 문제는 이라크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결국 냉전의 종식후 21세기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전쟁의 원인이 남의 나라 일에 참견하지 못해 안달하는 미국의 속성에 기인하고 있음을 감독은 지적한 것이다. 더 나아가 미국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전쟁은 끊임없이 피어나고, 더군다나 그 미국의 시선은 지옥도 속에 있는 파라다이스 그린존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은 그 파라다이스 그린존안에서 관료회의를 하고, 기자들은 신문기사를 쓰며, 꼭두각시 대통령을 만들어낸다. 그 덕분에 시선이 만들어낸 벽 뒤에 있는 지옥에서 이라크의 국민이, 미국의 젊은 군인들이 개죽음을 당하고 있는 현실은 차단된다. 그 덕분에 그린존안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기자들의 기사는 조작된 정보를 진실인 양 호도하는 거짓된 뉴스를 만들어내고 거짓은 진실이 된다.
결국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린존은 미국의 추함을 드러내는 미장센이면서 전쟁의 해결은 시선을 극복하지 못하는 미국에 의해서는 요원할 것임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프레디라는 인물은 중요해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명의 진실되고 용감한 군인이 진실을 전달하는 과정은 멋진 일이다. 영화적 장치로 더할 나위 없는 영웅이며 환호의 대상이다. 프레다가 바라보는 시선이 밀러의 시선이 되고 관객의 시선이 되어 강대국에 의해 장난처럼 저질러지는 어처구니 없는 전쟁의 이면을 보게 되길 감독은 바라고 있는 것일테다. 어쩌면 이미 다 짐작하고 있고 알고 있는 사실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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