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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다>는 김현명 감독의 데뷔작이다. 그는 80년대 몇 편의 영화를 만든 후 경력을 이어가지는 못한 감독중의 한명이다.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그러나 연출에서 새롭다는 느낌은 부족해 보였다. 초반 아가다의 심리를 드러내는 사선앵글의 사용도 좀 진부해 보였고, 회상으로 보여지는 초현실(?) 장면도 다소 과하게 느껴지더라. 또한 후반부의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전체적으로 모험 대신 안전을 택한 느낌이었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신인감독다운 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혜리는 신앙심이 깊은 아버지의 전폭적 지원과 함께 수녀가 되기 위해 수녀원에서 수도 중이다. 그녀는 이제 아가다로 불린다. 착실하게 수도를 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수도자가 될 것이냐 환속할 것이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결국 아가다는 하느님 대신 아버지를 선택하며 환속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임종을 맞게 되고, 아가다의 방황이 시작된다.

 

유홍종의 원작 소설을 읽어 보진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영화 <아가다>는 이음새가 좀 촘촘하지 못한 편이어서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힘을 잃는다. 아가다와 아버지의 관계, 아가다와 다두 신부의 관계, 아가다와 현욱과의 관계 등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관계들이 있는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 특히 아가다의 고뇌가 아버지의 죽음에서 비롯되고 있으므로, 아가다가 생각하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친절하게 있어야 했다고 생각되는데, 영화속에서는 그냥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자신을 사랑으로 키웠다는 정도에서 그치고 만다.

 

대신 감독은 영상으로 그 부분을 미학적으로 설명하고 싶어 한다. 아버지의 관을 뒤따르는 아가다의 옷이 하나씩 벗겨지며 나신이 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은 태어날 때의 순수한 모습일 수도 있겠고, 또 다른 면에서는 근친상간적 욕망을 드러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가다가 현실의 아버지 대신 하나님 아버지라는 대리자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밋밋한 연출로는 차라리 대사로 설명해 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


영화의 후반부에서도 아가다가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과정이 과감(?)하게 생략되어 있어 갑작스럽다는 인상이 짙어진다, 그야말로 근근이 아가다에게 동일화해서 그녀의 고통을 이해해 보려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영화속에서 보여지는 고난과 고통의 묘사가 평면적이다 보니 아가다의 기억상실을 불러올 만한 강렬한 동기로 기능하지 못해서 공감하기가 힘들었다.  


이보희가 참 열심히 한다는 생각은 들던데, 어쩐 일인지 연기를 잘한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고 좀 어색했다. 유인촌 역시 역량에 훨씬 못 미치는 연기인 걸 보면 감독이 연기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다만 다두의 어머니를 연기한 관록의 여배우 이경희는 연기를 안하는 듯 보여도 무게 중심을 잘 잡아 주었다. 


개봉 : 1984년 5월 30일 국도극장

감독 : 김현명

출연 : 이보희, 유인촌, 이경희, 이종만, 김원섭, 문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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