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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에 개봉된 노세한 감독의 <장대를 잡은 여자>는 당대의 사회적 문제를 적절하게 포착한 것은 높이 살만했지만 너무 저렴해 보이는 화면의 질감과 결말 부분의 미흡함이 아쉬운 영화다.

 

운동선수 출신의 실업자 명호(홍정민)는 결혼 상담소를 통해 돈 많은 여자를 만나 출세해 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가 소개받은 여자는 전문 맞선꾼인 수경(나영희).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된 명호에게, 오히려 소장(박원숙)은 전문적인 맞선꾼이 될 것을 제의하고, 명호는 유한부인들의 성노리개 생활을 하게 된다. 명호를 사랑하게 된 수경은 그의 그런 생활을 안타까워 한다.

 

그가 만난 여자들 중의 하나였던 재벌의 후처 민여사(김영애)는 명호를 사랑하게 되고, 자신의 모든 돈을 버릴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와중에 민여사의 동생은 누나가 부를 걷어차버릴까 노심초사하다 소장과 결탁하여 명호에게 헤어지를 종용한다. 환멸을 느낀 명호는 수경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모든 것을 버린 민여사도 수경도 죽는다. 명호는 다시 홀로 남는다.

 

소설가 조선작의 원작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인지 사회의 어둠을 파고 드는 시선은 날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결혼상담소라는 소재와 돈 많은 이혼녀를 만나 한 몫 보려는 한탕주의 젊은이의 모습이 만들어내는 지점은 어느 정도 사회비판의 시선을 확보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제작비를 거의 들이지 않은 듯한 빈티나는 화면구성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또한 장대높이뛰기 선수 출신의 명호가 유한마담들의 성노리개감으로 전락하는 과정은 언뜻 설득력 있게 다가왔지만 수경이나 민여사가 명호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은 좀 급하게 처리되면서 공감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조금만 더 디테일하게 인물을 묘사하고 화면을 구성했다면 이 영화는 좋은 소재에 힘입어 꽤 근사한 사회비판영화라는 자격을 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도시화의 밑바닥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일 것이다. 그렇다면 도시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지 못한 시골출신의 운동선수든, 고아로 태어나 사기상담소에서 맞선녀가 되는 것이든, 사기결혼상담소를 운영하는 것이든, 돈 때문에 재벌의 후처가 되어 사는 것이든, 그런 누나가 돈을 버리고 떠나 버릴까 전전긍긍하는 동생이든, 모두 급격히 진행된 한국의 도시화와 근대화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실패한 인물들이다. 


노세한 감독이 이러한 비인간적인 도시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제시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카테고리와 함께 농촌 혹은 고향이라는 공간이다. 하지만 진정한 고향이라는 공간은 사라졌다는 듯, 수경과 민여사가 죽으며 명호의 행복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 현대사회는 더이상 거래가 아닌 진정한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PS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영화 <장대를 잡은 여자>는 한국영화계의 인재였던 <겨울나그네>의 곽지균이 감독이 각색을 했고, 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를 이끌었던 강우석 감독이 조감독으로 참여하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개봉 : 1984년 5월 5일 서울극장

감독 : 노세한

출연 : 홍정민, 김영애, 나영희, 박원숙, 장기용, 남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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