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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윤 감독의 <속 병태와 영자>를 보았다. <바보들의 행진>과 <병태와 영자>의 속편격인데 이야기가 정확하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병태와 영자>에서 쌍둥이를 낳는 에피소드가 있지만, <속 병태와 영자>에서는 결혼하기 전 함이 들어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바보들의 행진>에서 영철을 연기했던 하재영이 병태를 연기하고 있다. <병태와 영자>를 찍은 후 작고한 하길종 감독 대신 이강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확실히 전체적인 완성도에서는 조금 떨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속 병태와 영자>는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에 뛰어든 병태와 영자의 모습을 통해 당시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가던 시절의 젊은이들의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은 생생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결혼을 했지만 백수인 병태의 모습은 요즘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취업난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영자가 병태가 취직됨과 동시에 요즘은 꿈의 직장이라 할만한 은행을 그만두는 모습은 당시에는 당연했던 걸까? 그 좋은 직장 집어던지다니 하며 나는 좀 아깝더라. 하지만 젊은 가장이 된 병태가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나 회사에서 술상무를 하며 살아남으려 하는 모습은 코믹하게 전개되는 편이지만 보기에 애처로워서 마냥 웃을 수 많은 없는 묘한 씁쓸함이 있다.

 

결과적으로 고생은 젊음이라는 무기로 이겨낼 수 있다는 무한 긍정 메시지만 반복하고 있는 <속 병태와 영자>는 솔직히 당대의 사회 현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래서 병태가 자신의 젊음과 솔직함을 무기로 일본과의 거래를 성사시키고 사표를 던지는 장면이 조금은 불편했다. 감독의 의도는 부당한 기성세대에 항거하는 젊음의 모습으로 보이기를 원했을 테지만, 오히려 젊음의 무기력만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병태 스스로 더러운 곳에는 발도 담그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그 더러운 물은 그대로이며 오히려 더 썩을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을 이 영화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더라. 이렇게 되면 병태의 노력과 공은 모두 상무의 차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할텐데... 결국 병태에게 남는 건 다시 한번 험난한 구직의 터널을 헤메다니는 것이다.

 

막연하게 사자의 용맹을 흉내내기 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사회를 비판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길종 감독의 영화에 비해서 더 나은 미학적 감각을 보여주지 못한 영화이기 때문에, 내용적으로 좀 더 사회의 부조리에 맞섰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다

 

결국 <속 병태와 영자>가 가치가 있다면 그 대부분은 하길종 감독으로부터 왔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럭저럭 사회생활의 한 단면을 포착하려 애쓴 각본가 조문진 감독의 노고를 같이 인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속 병태와 영자>는 내용적으로 투박하고 구조가 이상하고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해도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젊은이들이 여전히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그러고 보면 요즘 병태와 영자는 환갑이 넘었을 것 같은데, 그 힘들었던 시절을 잘 살아내셨을런지?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솔직히 당시 억압의 사회속에서 가진 것 없는 20대 후반의 청춘이 기댈 것은 젊음, 그것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젊음이라는 희망마저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들이 어떻게 그 동토의 시절을 견디어 냈겠는가 말이지… 


개봉 : 1980년 11월 19일 대한극장

감독 : 이강윤

출연 : 하재영, 이영옥, 김추련, 손창호, 김형자, 이승현, 이일웅, 한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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