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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 감독의 1974년 작품 <토지>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1부에 해당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방대한 내용이지만 윤씨부인(김지미)과 최참판댁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영화가 구성되었다. 김수용 감독은 많고 많은 다양한 인물들을 나름대로 이해가능하게 적절하게 캐릭터를 잡아낸다. 또한 유려한 촬영이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깊이감은 이 영화의 완성도에 충분히 기여하고 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영화 후반부를 이끌어가야 할 서희의 카리스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길상과 봉순의 존재감마저 뚜렷하게 살아나지 못하면서 서희의 탈출 부분에 대한 클라이막스에 힘을 싣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불균질적인 문제를 김수용 감독의 실책으로만 탓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나는 김수용 감독이 이런 불균질성을 충분히 인지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불균질이 감독 본인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외부적 요인에 기인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시계를 돌려 1974년으로 가보자. 때는 유신시대. 좋은 영화는 유신의 이념을 드러내거나 혹은 반공이었으며 좀 더 나아가면 충, 효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바로 이중으로 잡혀있던 검열의 산물이다. 나는 토지를 보면서 악명높은 검열의 모습을 느꼈다. 그래서 서희의 카리스마가 중심이 되어야 할 후반부를 감독은 뜬금없는 독립투쟁영화로 바꿔버린다. 원작속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던 동학에 관한 스토리가 대부분 삭제되거나 축소된 것은 분명 시대적 한계와 각색의 편의성상 이해가능한 지점이었다고 양보하자. 그러나 영화의 리듬을 해치면서 까지 삽입된 독립투쟁 시퀀스는 어떤 강압이 아니고서는 불가능 하지 않을까?
그런점에서 김수용 감독의 <토지>는 아쉬움을 남긴다. 멋진 미장센의 연출은 해냈지만, 역시 감독의 일방적 타협은 실망스럽다. 영화 <토지>의 후반부를 이토록 와르르 무너져내리게 만든 건 관의 개입이라고 추측해본다. 그렇다고 영화를 만든 감독의 책임이 회피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니까... 하긴 당시의 영화는 감독이 아닌 각하의 예술이었던가? 김수용 감독에게 하나 아쉬운게 있다면 비범하게 반항했던 미꾸라지의 몸짓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 그거다. 그래서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쉽게 들어 올리지 못하게 한다. 더불어 그가 항상 충무로의 모범생이지만 일등은 아닌 이유인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개봉 : 1974년 11월 23일 국도극장
감독 : 김수용
출연 : 김지미, 이순재, 허장강, 김희라, 황해, 최남현, 최정민, 우연정, 여수진, 도금봉, 주증녀, 이자영, 이영옥, 최봉, 남수정, 방수일, 최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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