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최하원 감독의 이름을 기억해야 겠다. 그다지 인구에 회자되는 감독이 아니라서 관심도가 덜했는데, 지금까지 감상했던 그의 작품 6편은 나름대로 완성도도 있었고, 재미면에서도 실망시키지 않는 편이었다. 물론 내가 잘 알려진 그의 성공작들만 봐서 느낌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최하원 감독이 펼쳐내는 내공은 만만치 않았다. 1970년대 그는 한국영화의 대표적 감독이었겠지만 지금의 후학들에겐 거의 잊혀져 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1978년에 개봉된 <절정>은 부부사이에 있을만한 육체적 트러블을 중심 소재로 두는 성인영화다. 정숙(김영애)은 남편(김희라)의 문란한 사생활에 혐오감을 느끼고 이혼한다. 하지만 곧 이혼을 후회하고 신혼여행을 갔던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역시 결혼생활에 문제를 가진 남자(한진희)를 만난다. 두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때로는 보듬고, 때로는 할퀴며 위로한다. 사실 두 사람은 모두 자살하기 위해 이 장소로 왔던 것. 알고 보니 그들은 같은날 신혼여행을 왔던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남자는 자살하고 정숙은 자신의 육체관계에 대한 지나친 결벽증이 남편을 떠나보내게 했다는 자각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내용적으로 모든 잘못의 원인을 결국 정숙의 결벽증에서 찾는 결말은 참 70년대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스타일적으로 이 영화는 무척 신선하게 보였다. 최하원 감독이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한 두 남녀의 뒤로 배치하고 있는 공간과 스토리보다는 심리를 따라가는 편집방식은 이 영화를 세련된 멜로드라마로 만들고 있는 일등공신이다. 유럽 예술영화를 의식한 듯한 이런 스타일이 자칫 과잉으로 넘치지 않도록 조절한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였다. 낮은 톤의 색채나 공간의 황폐함이 두 주인공의 심리를 반영하는 미장센도 좋아보였다.
한편으로 이 영화를 김수용 감독의 78년 작품 <웃음소리>나 <화려한 외출>에서 시도한 스타일과의 유사성에도 주목하고 싶다. 78년과 그 즈음에 무슨 일이 있어서 이러한 모더니즘적 스타일적 영화가 발표되었는가 하는 것인데, 이것은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개봉 : 1978년 11월 4일 단성사
감독 : 최하원
출연 : 김영애, 한진희, 김희라, 김형자
'한국영화 > 1970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광의 9회말 - 김기덕 감독의 야구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마지막 작품 (0) | 2018.10.06 |
---|---|
토지 - 박경리 원작의 4부작중 1부를 영화화 (0) | 2018.10.06 |
인간사표를 써라 - 배우 박노식의 대단한 감독 데뷔작 (0) | 2018.10.06 |
빗속에 떠날 사람 -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삼각관계 (0) | 2018.10.03 |
행운 - 재벌 성속녀의 남편찾기 (0) | 2018.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