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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몇 년 만에 영화를 보고 난 후 눈시울이 뜨거워졌는지 모르겠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말이다. 하지만 그 눈물이 조금 낯설고 부끄러웠던 이유는 감정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눈물이라기 보다는 (, 영화에 몰입했다기 보다는) 벤자민이 아내와 딸을 위해 떠나기로 결심하고 그 이후 그가 어려지기 시작한 후 갑자기 센티멘탈해지면서 만들어진 눈물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물 흐르듯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최상의 조건에서 만들어진 수공예품처럼 보였다. 뛰어난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은 할리우드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드라마 한편을 내 놓았다는 데 의심이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영화가 종반을 넘어서면서도 무덤덤했다. 재미는 있는데 이상하게 감동이 없었다.

 

데이빗 핀처의 영화이기 때문에 내가 기대하는 부분이 남달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파이트 클럽>을 보고 난 후 데이빗 핀처 쥑인다를 외치며 난리부르스를 치던 시절이 있었다. 난 핀처의 팬이었다. 그전 작품인 <에이리언 3>, <세븐>, <더 게임>도 무척 좋아했고 그가 만든 뮤직비디오도 상당히 좋아했기 때문에, <파이트 클럽>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던 셈이다. 다음 작품 패닉룸까지 완전 열광의 도가니였었다.^^ 당시 그의 영화에서는 파괴의 쾌락이 있었고, 그것은 이성이 억제하고 있던 무의식의 일탈본능을 대리충족 시켜주었다.

 

하지만 벤자민의 영원한 사랑 데이지처럼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늙어가고 차분해지는 걸까? 핀처가 거의 5년만에 발표한 신작 <조디악>은 당황스러웠다. 남들은 그의 최고 걸작이라고 말하기도 하던데, 난 길들여진 사자처럼 조신해진 핀처에게 솔직히 실망했더랬다. 그는 아직 클린트 이스트우드 흉내를 내기보다는 좀 더 발랄했으면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보기에 그의 목표는 위대한 할리우드 고전주의(?) 감독들의 뒤를 이어 포스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을. 핀처가 조디악 이후 보여주는 고전적 스타일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는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분명히 데이빗 핀처는 발전하고 있는 것일 테다. 내가 조금 아쉽다고 그의 발목을 붙잡을 수는 없지 않나.^^ 이제 새로운 데이빗 핀처에게 내가 적응해야지....


어쨌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시간에 관한 영화이면서 희생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시간을 바로 돌리나 거꾸로 돌리나 결국 종착점은 죽음이구나 하는 것이 정답이면서도 낯설었다. 시간을 되돌린 곳에 죽음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사람이 산다는 것은 자신과의 투쟁의 연속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이라는 생각도 더불어 해봤다. 퀴니의 삶, 1차대전 전쟁에서 사망한 맹인 시계공의 아들, 젊음을 세상에 주고 이제 양로원에 모여있는 노인들의 삶등은 모두 타인을 위한 희생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결정적으로 나의 감성을 자극한 부분은 벤자민이 딸을 위해 떠나기로 결심한 이후 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점점 어려지면서 10대 초반의 모습, 데이지가 이젠 늙어 양로원으로 들어오면서, 점점 더 어려지는 벤자민의 모습에서... 특히 이제 아장 아장 걷는 갓 돌이 된 듯한 아기의 모습의 벤자민이 데이지와 산책하며 그녀의 뺨에 뽀뽀를 해주던 장면과 막 태어난 아기의 모습으로 데이지의 품에서 눈을 감던 모습... 마지막 30여분의 여운은 한동안은 지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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